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8)
할망구
민영진 선생님의 팔순을 맞아 몇 몇 지인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가볍고 조촐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선생님 내외분을 뵈었다.
팔순을 맞은 소감을 여쭙자 뜻밖의 이야기를 하신다. 할망구 이야기였다. 71세를 맞았을 때 누군가가 ‘망팔’을 맞으셨다며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望八’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으로 71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81세는 ‘망구’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는데, 가벼운 상상은 맞았다. ‘望九’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로 81세를 이르는 말이었다.
‘망구’에 이어진 말이 ‘할망구’였다. 설마 할망구가 망구에서 왔을까 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할망구라는 말은 망구에서 온 말이었다. 익숙한 말 할망구가 낯선 말 망구에서 왔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여겨졌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 중에는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있는데 왜 유독 할머니를 가리키는 할망구라는 말만 있는 것일까 싶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회생물학적 해석이 필요한 대목이었다. 환갑도 넘기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대개는 남자보다는 여자의 평균 수명이 높았기 때문에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할아버지에게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90을 바라보는 연배는 할머니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할머니를 지칭하는 할망구라는 말만 남아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던 것이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 창문 밖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이 더욱 붉게 매달려 찬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망구에 이르신 선생님이 더욱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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