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9)
지지 못한 지게
북콘서트가 있어 원주를 다녀왔다. 원주청년관과 하나복강원네트워크가 함께 주관하는 행사였다. 여전히 원주청년관 지하의 <숨 카페>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목회자들과 교우들, 독서모임에 속한 이들이 함께 참석을 했는데, 오랜만에 대하는 얼굴들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더욱 컸다.
처음 제안을 받을 때만 해도 DMZ를 걸은 이야기를 담은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야지 했는데, <작은교회 이야기>로 바꾸게 되었다. 몇 명이 참석할지를 알지 못하는 터에, 출판된 책 중에서 거의 판매가 끝난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자연스럽게 단강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침 단강도 원주권에 속한 마을, 그런 점에서는 일리 있는 선택일지도 몰랐다. 예배당이 없던 외진 마을, 내게는 첫 목회지,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어딘지도 모르고 단강으로 들어가던 날부터, 15년간 단강에서 지내며 있었던 일, 가졌던 생각들을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내 마음속으로는 마치 흑백 필름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눈 이야기 중에는 ‘지지 못한 지게’ 이야기도 있었다. 단강에서 첫 번째로 맞은 겨울이었다. 어느 날 아랫마을로 내려가던 나는 저만치 논둑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작은 키에 독특한 걸음새, 나무를 한 짐 얹은 지게를 진 채 땅만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대번 알아볼 수가 있었다. 작은 오두막집에서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집사님이었다.
신작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막 큰길로 올라서는 집사님을 만났다. 지게를 지고 오느라 집사님의 콧등에는 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잠시 길 위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게를 져 드리기로 했다. 집사님은 펄쩍 뛰며 만류를 했지만 짐을 나누고 싶었다. 집까지는 거리가 제법 남아 있기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지게 아래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등을 붙이곤 일어나려는데, 무슨 일인지 어깨끈이 자꾸만 팔뚝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지게를 져 본 지가 오래되어 그런가 싶어 더욱 지게에 바짝 다가앉으며 몇 차례를 더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주르르 주르륵 때마다 어깨끈은 팔뚝 쪽으로 흘러내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집사님은 깔깔 웃어댔다. 눈물이 많았던 만큼 웃음도 흔했던 분이었다. 그제야 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지게는 체구가 작은 집사님이 당신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크기의 지게였던 것이다. 지게의 크기도 여느 지게보다 작았고 어깨끈도 여느 끈보다 짧은 것이었으니 덩치가 큰 내게 맞을 리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말로만 돕겠다 했을 뿐 지게는 다시 집사님이 졌고, 난 집사님을 따라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책상에 앉은 나는 낮에 지지 못한 지게를 두고 이렇게 노트에 적었다.
“집사님, 사람에겐 저마다의 고통이 있나 봅니다. 다른 사람이 져 줄 수 없는, 저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저마다에겐 있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작아져야 당신의 고통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 닿을 수 있는 건지, 오늘 지지 못한 당신의 지게를 두고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일, 하지만 그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끝이 아려왔다. 나는, 이 땅의 교회는 이웃들의 짐과 아픔을 나누어 질 수 있을 만큼 작아진 삶을 살고 있을까, 덩치가 너무 커서 말로 대신하며 구경만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대답이 뻔한 질문이 맘속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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