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8)
해바라기의 미덕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 빈 화분걸이가 걸려 있는 담장 곁으로 해바라기가 서 있다. 푸른 이파리 끝 노랗게 피었던 해바라기가 온통 진한 갈색으로 변한 채 겨울을 맞는다. 사라지기 전 먼저 찾아오는 것이 빛깔을 잃어버리는 것, 저물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바라기의 시간이 다 끝났구나 싶은데,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해바라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참새들이 찾아든다. 참새들이 해바라기를 찾아오는 길을 나는 안다. 별관 꼭대기 옥상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쏟아지듯 먼저 내려앉는 곳은 해바라기 건너편에 서 있는 소나무, 딴청을 피우듯 소나무에 앉아 숨을 고른 뒤에야 폴짝 참새들은 해바라기를 향해 건너온다.
참새들이 해바라기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 때문이다. 해만 바라보아 얼굴이 탄 듯 얼굴 가득 까만 씨앗으로 남은 해바라기 씨앗을 열심히 쪼아 먹는다. 겨울을 맞는 참새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양식이자 맛있는 간식이지 싶다.
씨앗을 쪼아 먹기 위해 참새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마른 해바라기도 흔들리고 휘어지지만, 해바라기는 용케 견뎌 자신을 찾은 참새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준다. 몰랐던 해바라기의 미덕을 뒤늦게 본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찔한 기로 (4) | 2019.12.13 |
---|---|
링반데룽 (4) | 2019.12.12 |
맨발로 가는 길 (4) | 2019.12.09 |
가장 큰 유혹 (2) | 2019.12.09 |
문명 앞으로 (2) | 2019.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