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9)
링반데룽
대림절 기간, 아침마다 두 사람과 마주앉아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교단에서 발행한 묵상집을 따라가고 있다. 며칠 전에 주어진 본문은 창세기 3장 9절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본문이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물은 최초의 질문이었다.
묵상을 나눈 뒤 링반데룽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로 ‘링반데룽’(Ringwanderung)은 둥근 원을 뜻하는 ‘Ring’과 걷는다는 뜻의 ‘Wanderung’이 합쳐진 말이다. 등산 조난과 관련된 용어인데, 등산 도중에 짙은 안개 또는 폭우나 폭설 등 악천후로 인해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계속해서 같은 지역을 맴도는 현상을 말한다.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지만 실제로는 같은 지역만을 맴도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샌가 체력은 바닥이 나고, 날은 어두워지고, 추위와 배고픔이 밀려오고, 결국은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어 목숨까지 잃게 된다.
링반데룽에서 빠져나오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자신이 링반데룽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내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걸음을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지금 너는 링반데룽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질문으로 대체하자 질문이 명료해졌다. 대답까지 명료해 진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우리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두고 진솔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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