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기로

  • 아찔한 갈림길 사이를 비틀거리면서 두 다리로 걸어가고
    두 눈으로 거듭 초점을 맞추어 가야 하는 삶인 것 같습니다.

    신동숙 2019.12.13 08:46
    • 그런 모습이 삶의 성실 아닐까 싶답니다.

      한희철 2019.12.14 07:23 DEL
  •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2.13 10:49
    • 변함없는 걸음,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2.14 07:24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0)

 

아찔한 기로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은 서로 대비가 된다. 빛과 어둠만큼이나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한 사람은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린 여인이다. 그녀가 막달라 마리아라면 드는 생각이 있다. 그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성성 대신 동물성만 남아 있는, 사물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예수를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면 무엇이 아까웠을까. 내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도, 모두 드려도 무엇 하나 아까울 것이 없을 것은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한다면 내가 드리는 것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인과 대비가 되는 한 사람은 여인을 비난하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은 그가 가룟 유다였다고 밝힌다. 그는 값비싼 향유를 부은 것을 두고 허비라 하며 여인을 책망한다. 일견 유다의 말과 행동은 정당해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니 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거기까지만 두고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향유를 부은 이야기를 잇고 있는 이야기는 유다의 배반 이야기이다. 마태에 의하면 유다는 예수를 넘겨주는 대가로 얼마를 주겠느냐고 흥정을 벌이기까지 한다. 그것도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말이다. 여인의 향유를 낭비라고 비난했던 사람이 말이다.

 

향유를 부은 여인 이야기와 유다의 배반 이야기가 맞물려 있는 것이 못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일은 그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곳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름다운 헌신과 추한 배반, 어쩌면 우리는 늘 그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자리지만 아찔한 기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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