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1)
걸레와 행주
대림절을 보내며 갖는 아침 묵상, 오늘 나눈 묵상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주님을 뵙는 복을 누린다는 말씀이었다. ‘청결’(카다로스)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혼합이고, 다른 하나는 키질이다.
가짜 휘발유 이야기를 나눴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넣는 재료는 물이 아니라 진짜 휘발유다. 기가 막힌 역설, 가짜 휘발유 이야기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가짜라고 보여도 진짜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안에 아무리 진짜가 많아도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시하기 쉬운 적은 양의 가짜인 것이다.
어릴 적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아침이면 머리에 뒤집어쓰고 옆집으로 소금을 얻으러 갔던 키, 요즘은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어릴 적엔 키질하는 모습을 흔하게 보았다. 키질을 하면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이 된다. 알곡은 키 안에 남고 쭉정이와 검불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리의 마음이 잘못된 것들과 섞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뵙는 지복(至福)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을 나눈 뒤 차 한 잔을 나눌 때였다. 걸레와 행주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리 깨끗하게 빨아도 걸레는 걸레, 걸레가 행주는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누가 그 말을 부정할 수 있을까. 아무리 깨끗해도 걸레를 행주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걸레와 행주 이야기는 말씀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담고 있다 여겨졌다. 그래도, 그래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적어도 마음이 청결하면 걸레를 무조건 더럽게 바라보지는 않을 수 있다는, 어떤 선입견도 없이 걸레를 걸레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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