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2)
말이 가장 많은 곳
말에 관한 글을 쓰다가 문득 지난 시간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우리말에 말은 ‘말’(言)이라는 뜻도 있고, 말(馬)이라는 뜻도 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은 그래서 더욱 재미를 더한다. ‘말’(言)은 말(馬)처럼 발이 없지만 천리를 가니, 애써 달려야 하는 말(馬)로서는 부러워할 일일지도 모른다.
발 없는 말(言)인데도 속도가 있다. 어떤 말은 빠르고 어떤 말은 느리다. ‘나쁜 소문은 날아가고, 좋은 소문은 기어간다.’는 속담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래된 경험이 쌓이고 쌓였을 것이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나쁜 소문은 더 빨리 번지고 좋은 소문은 더디 번진다니, 그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태 전 켄터키 주 렉싱턴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토머스 머튼이 수도자로 지냈던 겟세마네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사방으로 광활한 들이 펼쳐져 있었고, 들판에서는 많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말이 참 많다고 하자 운전하는 목사님이 말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국왕실의 말들도 대개는 켄터키 주에서 돌보고 공급한다고 했다. 이야기 끝에 덧붙인 말이 있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말들이 가장 많은 곳이 켄터키 주일 거예요.”
가까운 지인들, 그래서 가볍게 농을 했다.
“그보다 더 말이 많은 곳이 있어요.”
차에 탔던 이들이 관심을 보이며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교회요.”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지만, 마음까지 유쾌했던 것이 아니었다. 우린 언제나 말 대신 삶으로 우리의 믿음을 살아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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