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3)
다, 다, 다
베드로의 부인과 예수의 붙잡힘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마가복음 14장 27~50절 안에는 같은 단어 하나가 반복된다. ‘다’라는 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7절)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한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절)
닭 두 번 울기 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말 앞에 베드로는 힘있게 말한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절)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말을 한다. 모든 제자들이.
굳이 택하라면 베드로와 제자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다. 그래도 명색이 제자인데, 어찌 스승을 버리겠는가? 다른 이들은 다 버려도 어떻게 주님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설령 주와 함께 죽으면 죽었지 주를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나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진심이었고, 확신에 찬 말이었을 것이다. 마음은 안 그런데 말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찌 주님을 버릴 수 있을까, 믿음이 약한 우리라도 얼마든지 그랬을 것이다. 아무래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너무 못 믿고 있거나, 십자가를 앞두고는 마음이 약해지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잠시 뒤, 또 한 번 ‘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제자 중 하나인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께서 붙잡히신 뒤의 일이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50절)
버리지 않겠다고 다 말했지만, 결국은 다 버리고 도망쳤다. 복음서 저자는 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장면을 외면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다. 다 장담했는데, 다 도망쳤다고.
제자들은 자신의 마음만 믿었다. 하지만 예수는 말씀을 통해 상황을 바라본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했던 스가랴13:7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다, 다, 다라는 말이 전해주는 가르침은 자명하다. 아무리 확신에 찬 말이라 할지라도 이루어지는 것은 내 말이 아니다.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다 하여도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주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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