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신동숙의 글밭(121)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세상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소식들로 연일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입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어설프게 안고서 주신 하루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습니다. 유튜브로 법정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도 듣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가는 곳마다 법정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끼고 다닌 하루였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마저 치우지도 못하고,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을 챙겨서 떠들썩한 식구들의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출가를 하였습니다. 식구들로부터 떠나와서 출가를 하는 장소는 거실 쇼파가 되기도 하고 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식구들과 함께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가 참 다르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다 챙겨주고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언젠가부터 어설픈 엄마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잠시 잠깐 주어지는 엄마의 빈 자리가 도리어 선물 같은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늦은 밤에 딸아이는 떡볶이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낮에 아들은 누나 곁에 나란히 앉아서 저도 따라서 색색깔 쿠키 반죽을 빚습니다. 사용설명서를 봐 가면서 오븐에 굽기까지 저 혼자서 다 해냅니다. 엄마의 역할은 그런 자녀들의 모습에 틈틈이 감탄하면서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이미 예전에 읽으면서 연필로 연하게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친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거듭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맑은 샘물을 마신 듯 푸른 하늘을 본 듯 제 속뜰로 맑고 투명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귀한 글들 중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이 봄날에 함께 나누고픈 단락이 있어서 그대로 옮깁니다. 


"<마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그 모진 추위와 비바람과 뙤약볕에도 꺾이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의지가 선연한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소로우의 일기≫에서 소로우는 이렇게 쓰고 있다.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앞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바탕 쓸고 닦아냈다. 아침나절 맑은 햇살과 공기 그 자체가 신선한 연둣빛이다. 가슴 가득 연둣빛 햇살과 공기를 호흡한다. 내 몸에서도 연둣빛 싹이 나려는지 근질거린다."(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 63~64쪽)


그 옛날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봄을 맞이하시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고요하고 투명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글숲을 거닐며 스님의 속뜰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답답하던 가슴을 슬고 지날 때마다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제 가슴을 누르던 것은 바윗돌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두터워진 모래 먼지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슬고 슬고 슬면 얼마든지 맑게 슬어낼 수 있는 세상의 먼지, 때때로 진흙탕이 될 때면 한 송이의 연꽃을 피울 수도 있는 그만치의 탁한 세상 말입니다. 이 땅에 한결같이 찾아와 줘서 고마운 봄날, 세상에서 불어오는 탁한 바람을 씻기는 건, 자연의 봄바람과 맑은 영혼의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인가 봅니다. 


딸아이는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지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가 정겹습니다. 그제서야 홀로 글숲을 거닐던 순례길에서 돌아와 저녁식사 뒷정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늦은 밤 유튜브로 법정 스님의 육성 법문을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듣다가 울컥 울컥 눈물이 나서 기침을 막으라는 팔꿈치로 눈물을 닦아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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