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9)
말로 하지 않아도
비가 오는 토요일, 교우와 점심을 먹고 예배당으로 돌아올 때였다. 예배당 초입 담장을 따라 줄을 맞춰 걸어둔 화분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하얀 비닐 우비를 입고 있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무실 간사인 장 집사님이었다.
비를 맞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화분 아래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자 화분마다 물이 차는데, 그러면 꽃의 뿌리가 썩어 죽는다는 것이다. 화분에는 물구멍이 두 개가 나 있지만 화분의 흙이 구멍을 막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화분에는 구멍을 뚫을 자리가 몇 개 더 있다면서 일일이 송곳으로 화분 아래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 많이 갈 텐데요.”
우비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빗속에 혼자 일하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인사를 했더니 집사님이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한다.
“마침 시간이 한가해서요.”
젊은 사람이 한가하다고 해서 비를 맞으며 화분 아래 구멍을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말로 떡을 쑤면 온 백성이 먹고도 남는다고 한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말로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화분에 구멍을 뚫는 것이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드러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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