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4)
상처와 됫박
이따금씩 떠오르는 사람 중에 변관수 할아버지가 있다. 나이와 믿음 직업 등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정을 나눌 수 있는 분으로 남아 있다. 변관수 할아버지는 단강교회가 세워진 섬뜰마을에 살았는데, 허리가 ‘ㄱ’자로 꺾인 분이었다. 언젠가 할아버지는 논둑에서 당신 몸의 상처를 보여준 적이 있다. 6.25때 입었다는 허리의 상처가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할아버지가 이번 겨울을 잘 나실까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겨울잠에 들기라도 한 듯 바깥출입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겨울 지나 봄 돌아오면 제일 먼저 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분이 변관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몸도 기역자, 그 위로 삐쭉 솟아오른 지게도 기역자, 지게를 진 할아버지의 모습은 묘한 형상을 만들어내곤 했다. 논둑 밭둑에서 달래를 캐는 날엔 꼭 사택에 들러 한 움큼 달래를 건네주던 정 많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집에는 됫박이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 말로는 ‘부엉이가 방귀 뀐’ 소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소나무의 어떤 부분에 병균이 침투하면 그 부분이 크게 부어오르듯이 두툼하게 변한다. 일종의 상처일 터였다. 그 부분을 잘라내어 ‘부엉이 방귀 뀐’ 부분은 동그랗게 파내어 됫박으로 쓰고, 가지 부분은 됫박의 자루로 쓰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는 벌써 오래 전, 할아버지 집에 있던 검붉은 빛 선명한 부엉이 방귀 뀐 됫박은 어디에 남았을지 모르겠다. 따로 됫박을 쓸 일도 드문 세상, 어쩌면 할아버지와 함께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문득 떠오른 ‘부엉이가 방귀 뀐’ 됫박은 묘한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상처가 됫박이 된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도,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품의 크기나 깊이도, 어쩌면 그가 입은 상처 혹은 그가 이겨낸 상처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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