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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로봇이 타 준 커피

by 한종호 2020. 5. 2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5)


로봇이 타 준 커피


심방 차 해남을 방문하는 일정을 1박2일로 정했다. 길이 멀어 하루에 다녀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다. 마침 동행한 장로님이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숙소가 있어 그곳에 묵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어둘 녘에 도착한 숙소를 보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진도라는 외진 곳에 그렇게 큰 숙박시설이 있는 것에 놀랐고, 그 큰 숙소가 꽉 찬 것에 더 놀랐다. 평일이었는데도 그랬으니 말이다. 


권사님이 권한 일출을 보기 위해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났다. 남해의 일출은 동해의 일출과는 사뭇 달랐다. 바다 위가 아니라 섬과 섬 사이에서 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해가 떠오르며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던 붉은 빛은 바라보는 마음까지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해돋이를 보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차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프런트에 들러 차 마실 수 있는 곳을 물었다. 일러주는 옆 건물로 갔더니 커피 향은 나는데도 차를 파는 곳은 보이질 않았다. 지하까지 내려가 물었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1층에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와 둘러보았지만 1층 어디에도 찻집은 없었다.


이게 뭐지, 당황해하고 있을 때 우리 눈에 띈 것이 로봇이었다. 한쪽 구석에 로봇이 서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장식용으로 세워둔 것으로 알던 우리는 혹시나 싶어 로봇 앞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직원들이 말한 곳이 그곳이지 싶었다. 


처음 대하는 상황, 서로가 이런저런 상상력을 발휘하며 모니터를 두드렸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은 맞았다. 몇 가지를 택한 뒤 선택 자판을 누르니 드디어 로봇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능숙한 동작으로 커피와 음료를 뽑았다. 뽑은 음료를 쟁반 쪽으로 옮기는 동작까지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주문을 끝났지만 우리는 또 다른 문제를 만났다. 음료는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꺼낼 수 있는지가 막막했다. 로봇은 아크릴 투명 벽 안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살펴보니 로봇 앞에 작은 스크린이 있었고, 거기에 번호를 입력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조금 전 차를 주문하며 받은 영수증에 번호가 찍혀 있는 것을 우리가 몰랐던 것이었다. 호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영수증을 다시 꺼내 거기 찍힌 번호를 누르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로봇, 마침내 우리는 원하는 음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로봇에게 음료를 주문하는 일을 마침내 해내다니, 우리는 일종의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발코니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 누군가의 말대로 마치 지중해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의 삶 속에서 멀리 떠나와 있다는 것, 드물게 아름다운 경치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런 마음을 거드는 것이 또 한 가지 있었다. 로봇에게 차를 주문해서 마시는 것이 마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 온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건 상관없이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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