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7)
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범죄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의 구체적인 예가 있다. 구석진 골목에 차량 두 대를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를 시켜둔다. 그 중 한 대는 앞 유리창이 깨진 차다. 그런 뒤 일주일을 지켜보면 결과가 다르다. 유리창이 온전한 차는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지만, 유리창이 깨져있는 차는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된다는 것이다.
예배당 앞에 있는 공터를 다시 한 번 꽃밭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크게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어서 덥수룩하게 자라 오른 풀과 꽃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어제는 교직원들과 시간을 내어 풀을 뽑고 삐쭉 무성하게 자란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를 솎아냈다. 코스모스 덤불 아래 숨어 있던 키 작은 꽃들도 캐내어 옮겨 심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싶어 화훼단지를 찾아 꽃을 사오기도 했다. 하나는 초승달 모양으로, 하나는 십자가로, 다른 하나는 하트 모양으로 꽃을 심었다. 가장자리에서 구경만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가운데로는 길을 내었다.
아직도 허술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변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지나가던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어떤 이는 가운데 통로로 들어와 꽃들을 살핀다. 꽃 앞에 꽃 이름과 꽃말 등을 달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변화 중 가장 놀랍게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공터 앞 도로에는 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겨우 두 대의 차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에 차를 주차시켜 놓으면 지나가는 차나 사람이 위험하기 마련인데, 비어 있는 때가 드물었다. 늘 서 있는 차 중엔 지게차도 있었다. 바라볼 때마다 아쉬움이 컸다. 그것은 서로를 위한 배려의 부재로 다가왔다. ‘주차금지’ 판을 세워두어도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주차금지’ 입간판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찌그러져 있다.
어젯밤 수요예배를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가며 일부러 확인해 보았더니 꽃밭 앞에 주차된 차가 보이질 않았다. 신기했다. 우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 오늘 새벽 기도회를 나가며 확인해 보았다. 역시 차가 없었다. 모처럼 꽃밭이 꽃밭다웠다. 뭔가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꽃밭 앞에 세우려 했던 작은 안내판을 세우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안내판엔 이런 글을 적으려 했었다. “예쁜 꽃을 바라보면, 우리 마음도 예뻐지겠지요!” 그 말이 ‘주차금지’라는 말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싶었었다. 법칙 중에는 깨진 유리창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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