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2)
해바라기
교회 마당 주변에 해바라기들이 서 있다. 키 자랑 하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너무 바투 자라 제법 솎아냈지만, 크는 키와 함께 잎 또한 크게 자라 교회를 빙 둘러 해바라기가 손에 손을 잡았다. 이파리 하나 뚝 따서 얼굴 가리면 웬만한 비엔 우산 되겠다 싶다. 기다랗게 목 빼어든 노란 얼굴들이 해를 바랄 올 가을은 더 멋있을 게다.
지난해 여름 비 오던 날, 승혜 할머니가 심어주신 몇 포기 해바라기가 이렇게 불어난 것이다. 가을이 되어 까맣게 익은 해바라기 씨를 따로 따지 않고 그냥 두었다. 새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남은 것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는데, 그 씨들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어 싹을 낸 것이다.
작은 시작, 큰 결과. 언제나 씨 뿌리는 일은 그러하건만, 사람은 어리석다. 때론 조급하고, 때론 그 힘을 믿지 않는다.
올 해 또한 지난해처럼 보내면 내년쯤엔 동네 길가마다 해바라기가 아우성이리라.
<얘기마을> (1989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가리 할아버지 (0) | 2020.06.30 |
---|---|
무심한 사람들 (0) | 2020.06.29 |
슬픔을 극복하는 길 (0) | 2020.06.27 |
땅내 (0) | 2020.06.26 |
뒤풀이 (0) | 2020.06.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