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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고픈 얘기

by 한종호 2020. 7. 20.

한희철의 얘기마을(31)


고픈 얘기


수요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시 쉬는데, 부엌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가보니 광철 씨였다. 작실 분들과 돌아가다가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웬일이에요, 광철씨?”

“지난 번 가져다 드린 밤 잡수셨어요?”


밤이며, 땅콩이며, 호박이며, 광철 씨는 늘 그렇게 먹을 것을 전하려 애를 쓴다. 예배시간 이따금씩 제단에 놓이는 들꽃도 광철 씨 손길이다. 그게 광철 씨 믿음이요 사랑이다.


들꽃을 꺾어서, 밭뙈기 호박을 심어서, 남의 집 일하곤 한 줌 땅콩을 얻어서 못 드리는 헌금 대신 드리는 광철 씨, 가장 가난하고 가장 깨끗한 드림이다.



광철 씨는 밀린 얘기를 했다. 안쓰럽다 여길 뿐, 아무도 그의 얘기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없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장례 치러주어 고마웠다고, 장사날 밥이라도 제대로 드셨는지 모르겠다고, 엄마만 안 돌아가셨으면 곧이어 다가온 아버지 환갑엔 전도사님 모시고 예배를 드리려고 했었다고, 엄마가 그러자고 몇 번이나 얘기 했었다고, 올핸 호박을 제대로 못 심어 호박도 많이 못 따다 드린다고, 일 안 가면 밤이라도 많이 주울 텐데 그렇지 못하다고, 지방여름산상집회 때 가나안 농군학교에 갔던 일 좋았다고, 내년에도 또 하면 또 가고 싶다고....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들어주는 이가 없는 광철 씨. 이야기가 고팠던 것이다. 무지무지 고팠던 것이다. 전도사는 그래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가던 길 되돌아 내려온 것이다. 더듬더듬, 어쩌면 토하듯 끄집어낸 이야기들.


웬일인지 가슴이 떨려 안으로 졸아들고, 울컥 전신에 눈물 시내처럼 흘러 광철 씨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 대책 없더라도 듣자. 듣기라도 하자. 말간 슬픔, 떨리는 가슴, 눈물 외엔 받을 길 없는 바보같이 여린 삶, 그렇게라도 지키자. 하얀 달빛 밟으며 몇 번씩 인사하고 다시 작실로 오르는 광철 씨. 야윈 몸 불안한 걸음새를 바라보며 흐린 두 눈으로 꽁꽁 마음속 다짐을 한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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