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한희철의 얘기마을(38)


평화


동네 남자들이 은경이네를 위해 한나절 나무를 같이 했습니다. 한 짐씩 경운기에 실어 날랐습니다. 반장님이 아침부터 방송으로 알리더니 어느 새 한데 모여 나무를 한 것입니다.


은경이 아버지는 지난 가을 팔을 다쳤습니다. 어둔 길 탈곡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다가 둔덕을 지날 때 기우뚱 중심을 잃으며 기울어졌는데, 그 순간 미끄러져 내리는 탈곡기를 막다가 팔을 다쳤던 것입니다.



덕분에 은경이네는 얼마 남지 않았던 나무가 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늘 이웃들이 마실 많이 오던 집이 썰렁한 냉방인지라 여느 해처럼 사람들이 모이질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은경이네를 위해 나무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나서니 마당엔 이내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이웃의 정이 고마운 은경이네는 보리로 밥을 짓고 말려뒀던 나물들을 꺼내 삶아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고추장에 석석 비벼 맛있게들 먹었습니다. 그리고도 저녁에는 칼국수를 밀어 또 한 차례 나누어 먹었습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았습니다. 은경이네 굴뚝에서 퍼져 나온 저녁연기가 매운바람에 어지러웠지만 푸근한 기운으로 퍼졌습니다.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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