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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물빛 눈매

by 한종호 2020. 8. 14.

한희철의 얘기마을(54)


물빛 눈매


5살 때 만주로 떠났다 52년 만에 고국을 찾은 분을 만났다. 약간의 어투뿐 조금의 어색함이나 이질감도 안 느껴지는 의사소통, 떨어져 있는 이들이 더욱 소중히 지켜온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놀라웠다. 헤어질 때 7살이었던, 지금 영월에 살고 있는 형님 만날 기대에 그분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강산이 변해도 수없이 변했을 50년 세월. 그래도 그분은 52년 전, 5살이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동굴 있는 곳에 가서 제(제사)를 드리던 일과, 강냉이 밭 산짐승 쫓느라 밤마다 형하고 빈 깡통 두들기던 일, 두 가지가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50년 넘게 이국땅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며 외롭고 힘들 때마다 빛바랜 사진 꺼내들 듯 되살리곤 했을 어릴 적 기억 두 가지. 아무리 구석구석 더듬어 헤매도 두 개의 기억뿐 더는 못 가 닿는 고국에서의 어린 시절, 꺼질 듯 가물거리는 기억의 불씨 꺼뜨리지 않으려 더욱 소중히 감싸 안아 마침내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새겨졌을 기억 두 가지.


밤마다 꿈마다 제를 드리고 언제고 귓전엔 깡통소리 요란했을 50년 세월, 이제는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이다. 그런 물빛 눈매를 전에 본 적이 없다. 


-<얘기마을>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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