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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건, 맑은 가난이더라

by 한종호 2020. 8. 27.

신동숙의 글밭(219)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건, 맑은 가난이더라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의사라는 직업의 엄중함-



어느덧 처서가 지나고, 어둑해진 서녘 하늘에 초승달이 보이는 밤이면, 선선한 밤바람이 답답하던 가슴속까지 어진 손길로 슬어 주는 듯하여, 이대로 여름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이내 제주도에서 한반도로 북상하고 있다는 태풍 바비 소식에 비설거지라도 하는지 다들 분주한 목소리다. 사는 곳이 달라도 조심하자며 부디 건강하라는 인사가 어디서든 한목소리다.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그렇게 한결같이 따뜻한 것이다.


검색을 하다가 올라오는 소식 중에, 창밖으로 거세게 비를 퍼붓는 제주도 태풍 영상을 보면서 조마조마해 있는데, 빕빕~ 문자 알림음이 깜짝 놀래킨다. 보나마나 코로나19 관련 소식이다. 그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코로나19 양성 환자의 동선과 거듭되는 안전 수칙 준수에 대한 당부의 마음인 것이다. 이 정부 참 애쓴다. 애달프기까지하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마음인지 오롯이 내 마음에 비추어 헤아려 본다.


그 마음이 무거워서, 그동안엔 약간 내려서 헐렁하게 쓰던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더욱 끌어올려서 얼굴에 밀착을 시키다 보니, 더운 김이 훅하며 제 숨에 숨길이 막힌다. 새로운 마스크 속 호흡법이라고 해야 할지, 마스크와 평화로운 공존법이라고 해야 할지, 우스운 생각이 잠시 일어난다.


마스크 안에선 가급적 숨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되도록이면 느리고 길게 천천히 깊게 숨을 쉬면서, 비록 내 코와 입을 막은 마스크지만, 착한 수문장과 대항하지 않으려는 유순한 마음을 내기로 한다. 그렇게 돌이킨 한 생각이 평화로운 공존의 첫걸음이 아닌가. 세계 평화의 첫걸음은 언제나 내 입으로부터 나오는 숨이 그 시작이라는 생각을 거듭 가슴으로 되뇌이며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8.15 광복절날 광화문의 십자가 네 거리에서 연출된 아수라장 이후로 연일 하루에도 수차례 빕빕~ 울려대는 알림음에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이렇게 매번 깜짝 깜짝 놀라는 것이다. 더구나 얼마 지나지도 않은 수해 침수로 인한 수재민들의 피해 복구도 이 땅 어디선가는 아직도 한창이라고 하는데,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전국적으로 파도처럼 번져가고 있는 이 마당에, 이 땅 어디선가 들려오는 일부 의사들의 파업 소식에 맥이 빠진다.


파 보나마나 그 잎을 보아 밥그릇 전쟁이다. 의사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 역시 의사가 되려고 하지 않은 분명한 이유가 직업으로 삼기엔 나 스스로가 그 일을 감히 감당치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사람의 목숨과 생명을 다루는 엄중한 직업이 의사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의사의 파업은 총성 없는 전쟁이지만, 어쨌든 밥그릇을 지키려는 그대들의 외침은 총성보다 더 깊이 폐부를 찌른다. 그 외침은 없고 가난한 자의 배고픈 외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부른 자의 외침이자, 배운 자의 외침이자, 이미 누리고 있는 자의 외침이자, 앞으로 확고히 누리고자 하는 자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내 말이 참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구석엔 있다.)


사회적 공인으로써 국가와 국민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해야 할 정치 지도자, 길을 잃기 쉬운 생활인들의 영성과 의식을 깨우쳐 주어야 할 종교 지도자, 우리들의 생명을 맡길 의사가 이 사회와 국민을 향해 제 밥그릇을 지키겠다며 선포하고서 겨누는 총과 칼이다. 구국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국가적 차원의 인질극인 것이다. 


그 옛날, 자신과 가족의 생명까지 걸고서 이 나라를 지키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는 그 뜻과 방향이 전혀 다른 길이다. 오로지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려 의술을 펼치던 동의보감 허준의 순결한 마음이 다시금 그립기까지 하다. 옛 선조들의 꽃처럼 순결한 정신을 어둔 밤하늘에 별처럼 가슴에 떠올려 가슴으로 바라본다. 이따금 답답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눈을 들어 숨결을 고르는 나만의 방법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2020년을 우리 후손들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유사 이래로 밥그릇 전쟁 치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을 국사와 세계사 수업시간과 역사책에서 이미 배운 바가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심은대로 거두는 법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치처럼, 인간사 또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못하는 법이다. 


그 시작이 사리사욕이라면 그 끝도 사리사욕의 구렁텅이인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역사 속에 어둔 그림자로 남아 있는 욕망의 역사들을 거울 삼아서 비추어 보아야 한다. 이 세대에서 끝나는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를 낳을 것이고, 손주를 낳을 것이고. 물질의 유산도 필요하지만, 결국 정말로 물려 주어야 하는 유산의 알멩이와 씨앗은 올바른 정신인 것이다. 내게도 이 점이 늘 숙제가 된다.


내가 이제껏 알고 있는 존경하는 분들 가운데, 역사 속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들 맑은 가난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꽃을 피우며 살다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신 분들이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한 성 프란치스코 신부, 미국의 의식을 100년 앞당겼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단순함과 간소한 월든 숲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하늘과 가난한 이웃을 사랑한 시인 윤동주, 숨을 거두던 마지막 순간까지 맑은 가난으로 아름답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신 법정 스님, 세계적으로 칭송과 부러움을 받고 있는 코로나19 의료 혜택의 근간이 된 국민의료보험의 마중물 의사 장기려 선생님, 억대의 인세비를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신 권정생 선생님. 어둔 세상 어둔 가슴에 별이 되신 분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어 본다.


그렇다고 이분들처럼 이렇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나부터도 이렇게 살지는 못하고 있다. 이처럼 잘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인질극을 벌이지는 말자는 뜻이다. 도리에 어긋나는 죄를 짓지 말자는 뜻이다. 당장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픈 환자를 모른체 하는 일은 곧 내 부모와 내 형제와 가족과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모른체 하는 일과 다름 아니라는 한 생각에 눈을 뜨자는 것이다.


만약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헛된 일을 꾸미거나 아픈 생명을 모른체 하는 일은, 엄연히 도리와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때는 든든한 울타리처럼 여겨지기도 했을 속해 있는 대중과 단체와 집단은 어느 한순간이 되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한다. 불리하게 되면 그야말로 모른체 외면하는 모습을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든든함과 평안은 신뢰에 뿌리를 내릴 때 싹이 튼다.


울타리 속에 숨어서 짓는 죄도 낱낱이 한 개인의 죄가 되는 것이 마음의 이치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양심의 저울대 심판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물질적 재산과 경제적 풍요를 누리자는 인생이 삶의 목적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직업이 바로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의사인 것이다.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와 의사라는 직업은, 사람들이 존경하기를 원하는 직업이기에, 그 누구에게보다 더욱 가혹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오늘날에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건, 맑은 가난과 생명을 향한 어진 눈길과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슴이 가리키는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눈동자 속에 깃든 어진 자비와 신뢰가 담긴 그러한 올바른 눈동자를 나 역시 신뢰의 눈길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리한 요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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