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68)
좋았던 집에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20여 년 동안 운전기사로 일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번 돈을 아껴 모아 꼬박꼬박 저금을 했습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부금을 부은 것입니다. 한 푼 한 푼 적은 돈이지만 내 집 꿈을 꾸며 쓸 것 안 쓰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만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추첨에서 당첨이 된 것입니다. 좁다란 아파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셋집 아니고 내 집인데요. 20여 년 동안 모은 돈이 꼭 아파트 값은 되어 그 값 치르고 나니 고생한 보람도 있고 여간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밥 먹듯 이사 고생시켰던 부인, 자식들에게도 난생 처음 뿌듯했으니까요.
그런지 두 달만의 일입니다. 그가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도무지 일할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기운이 쪽 빠져 나가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술까지 마시게 되었고, 그렇게 좋았던 집에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왜냐고요?
사기를 당했냐고요?
재산 문제로 자식끼리 싸움을 했냐고요?
아닙니다, 모두 아닙니다.
이유는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아파트 값이 두 달 만에 배로 오른 것입니다. 두 배로 올랐으면 좋아할 일이지 왜 회의에 빠졌냐고요? 그러기에 그를 만나면 이런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허리가 부러져라 껴안아 드릴 작정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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