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65)
같이 한 숙제
“목사님, 목사님, 속담 좀 가르쳐 줘요.”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학교에서 속담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 준 것이다. 예배당 책장에서 <속담대성>(俗談大成)이라는 책을 찾아 꺼내 줬다.
잠시 후 아이들이 다시 달려왔다.
“국어사전 좀 빌려줘요.”
낱말 조사를 스무 가지씩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장을 다 찾아봤지만 국어사전이 없다. 원래 없었는지, 누가 빌려간 것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서재에 있는 <새우리말큰사전> 두 권을 뽑아들고 예배당으로 가 아이들과 숙제를 같이 했다. 책에서 잘 모르는 낱말을 찾아 밑줄을 긋고 두꺼운 사전을 뒤져 뜻을 찾았다.
어느새 스무 개. 어렵게 생각했던 숙제를 쉬 마친 아이들은 해방감에 좋고, 오랜만에 낱말을 찾으며 아이들과 어울린 나는 그 어울림이 좋았다.
“고맙습니다.”
숙제를 마친 녀석들은 밤을 딴다며 밤알처럼 우르르 몰려 나갔다.
가벼운 발걸음. 오늘 아이들 가방마다엔 잘 익은 밤알들이 가득할 것이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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