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67)
부자와 빈자
저승길 심판관 앞에 한 부자가 섰다. 세상 살 때 그러했듯 부자는 위세가 당당했다. 그를 본 심판관이 말했다.
“불쌍한 인생아, 너는 부유했지만 네 부의 기초는 다른 이의 눈물이었다. 괴롬의 방으로 가거라.”
부자는 힘없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역시 부자였던 이가 몹시 두려운 빛으로 섰다. 심판관이 말했다.
“위로 받을 지라, 인생아. 네 부의 기초는 네 땀이었다. 땀이 네게 부를 주었을 때 넌 괴로워했다. 어느 게 네 몫이며 어느 게 나눌 몫인지를. 위로의 방으로 가라.”
부자에게 내리는 판결을 본 한 빈자가 다행스런 얼굴로 심판관 앞에 섰다. 한동안 빈자의 얼굴을 쳐다볼 뿐 말이 없던 심판관이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지고, 그댄 가난했지만 오직 너를 위해 가난했구나. 네가 가난했던 건 다른 이의 눈에 비친 네 명예 때문이었다. 그 명예를 잃고 싶지 않아 넌 분명 게을렀다. 한숨의 방으로나 가거라.”
그러자 다음에 서 있던 한 빈자가 심판관이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로나 보내주십시오.”
그러나 심판관의 판결은 달랐다.
“스스로 가난하여 스스로 넘친 자여, 모두 주고도 모두 남은 듯 사랑으로 마음 밑바닥 긁던 소리 없던 소리를 내 들었노라.
큰 부자여, 네가 닦아준 눈물이 꽃들로 피어난 기쁨의 방으로 가거라. 거기가 네 방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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