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1)


짧은 여행


마을에 결혼을 하는 이가 있어 모처럼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좋은 날, 아침부터 찬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고생고생 키운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기쁨과 보람, 그 뒤에 깔린 아쉬움을 보았습니다. 신명나는 춤을 췄지만 춤사위에 담긴 마음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모처럼 찾은 서울,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찾아간 종로서적엔 책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2층 한 쪽 구석에 나란히 쌓인 <내가 선 이곳은> 책도 보았습니다. 내가 쓴 책이 낯선 이를 맞듯 서먹하게 나를 맞았습니다. 이제야 찾아오다니, 내 무관심에 쀼루퉁 화가 난 듯도 싶었습니다.



산책하듯 책과 사람 사이를, 말과 침묵 사이를 걸어 다녔습니다. 소설류를 파는 매장에 들렸을 때 난 거기서 한 모습에 그만 온통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대학교 1-2학년쯤 됐을까 싶은 한 여학생이 아예 서점 바닥에 책상 다리로 주저앉아 책꽂이에 등을 기대고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도 그랬지만 책을 읽다말곤 뚝뚝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데 남 의식할 것도 없이 부끄럼도 없이 그냥 그렇게 눈물로 읽을 뿐이었습니다.


몰두! 참으로 오랜만에 대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뛰듯 걸었습니다. 여전히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로3가로 향할 때 다시 한 번 바쁜 걸음을 붙잡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 스님이 지나가는 이에게 길을 묻고 있었는데, 보니 스님은 서양 사람이었습니다. 서양 스님, 그는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서 지나가는 이에게 어디론가 가는 길을 묻고 있지만, 그가 정말 묻고 있는 것은 멀고 먼 구도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허둥지둥 지하철을 타고 헐레벌떡 뛰어 원주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원주에서 단강으로 들어오는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한 서울에서의 막차입니다.


땅거미 깔리기 시작한 단강에 내렸을 때 마을은 꿈결처럼 조용했고, 계속 탄 차 머리 식힐 겸 한참 서서 바라보는 마을이 어둠 속 아늑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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