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01)
광철 씨
지난 가을의 일입니다. 아침부터 찬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김남철 씨가 회사로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해 마을 보건소장님과 결혼한 김남철 씨는 원주에 있는 한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트럭을 몰고 출퇴근을 합니다.
강가 길을 신나게 달려 조귀농 마을로 접어들 때였습니다. 앞에 누군가 비를 맞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기도 했고 빗속 우산도 없이 누가 웬일일까 싶어 차를 세웠습니다. 보니 광철 씨였습니다.
마른 몸매의 광철 씨가 그냥 비를 맞아 온 몸이 젖은 채로 걸음을 멈췄습니다. 광철 씨는 일을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전날 무 뽑는 일을 하겠다고 일을 맞췄던 것입니다. 그만한 비라면 일이 미뤄질 만하고, 안 가면 비 때문이려니 할 텐데, 광철 씨는 혹 기다릴지도 모를 주인을 위해 일터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른 타라고 김남철 씨가 문을 열었습니다. 찬비를 맞아 파랗게 추워진 몸이 여간 안쓰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광철 씨는 사양을 했습니다. 이 젖은 몸으로 차를 타면 자기 때문에 차를 버린다며 예의 그 더듬거리는 말로 설명을 했습니다. 자긴 됐으니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김남철씨 마음이 아리도록 아팠습니다. 나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헛일 될지도 모르는 길을 이른 아침 비 맞고 가는 것도 그랬고, 웬만한 사람이면 태워 달라 차를 세웠을 텐데, 차 버릴까봐 그냥, 그냥 가리니 말이지요. 트럭에서 내린 김남철 씨가 등을 떠밀어서야 광철 씨를 차에 태울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김남철 씨를 통해 들은 광철 씨 이야기입니다. 김남철 씨는 광철 씨가 어떤 마음인지를 그 일로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탁자 위에 귤 두 개가 있었습니다. 예배 마친 후 광철 씨가 사택에 들러 전했다는 것입니다. 일하러 간 집에서 일할 때 먹으라고 준 귤을 안 먹고 호주머니에 넣었다가 목사님네 어린 딸 준다며 가져온 것입니다. 봄엔 퇴비를, 가을엔 볏가마니를, 사람들은 대개 무거운 짐을 질 때만 광철 씨를 필요로 합니다.
비쩍 마른 허약한 몸매의 서른 셋 노총각 광철 씨. 그냥 걸어도 불안한 걸음새인 광철 씨는 아무 싫단 말없이 온갖 무거운 짐을 지지만 광철씨 어깨에 걸쳐 있는 저 무거운 삶의 무게는 누가 어떻게 나눠져야 하는지, 광철 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흐려지는 것을 어쩌지 못합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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