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얘기마을(144)
종일이 할머니
김 집사님이 아파 심방을 갔더니 종일이 할머니가 와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종일이 할머니가 고맙다고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합니다.
지난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에 종일이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부론중학교에서 올 입학생부터 입게 되었다는 교복 값이 없어 당신 혼자 맘고생이 많았는데 종일이가 뜻하지 않은 장학금을 타서 걱정을 덜었다는 것입니다.
일흔여덟,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쁜 몸으로 손자 셋을 돌보시는 할머니, 아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며느리는 어디론가 새살림을 나가고, 그래서 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봅니다. 모두가 한창 먹을 때고 한창 개구질 때입니다.
‘부모 읍는 자식 소리 안 듣길려구’ 찬이며 빨래며 할머닌 ‘아파도 아픈 줄 모르구’ 노상 분주합니다. 학생인 손자들에게 들어가는 잔돈도 은근히 많아 ‘한동네 사는 집안 네에도 부주 한번 못하고’ ‘품 팔고 나락 판 것 아끼구’ 아끼지만 늘 쉽지 않은 생활, 할머닌 고마움으로 열린 맘 속 담긴 이야기를 모처럼 길게 하십니다.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 모두가 아픈 이야기들입니다. ‘팔자가 쎄서’ 그렇다고 할머닌 팔자 탓을 하지만 그게 어디 팔자 탓이겠습니까.
이야기를 하던 종일이 할머닌 끝내 눈물에 젖고, 같이 이야기를 듣던 김천복 할머닌 그 이야기 모두 당신 이야기인 듯, 종일이 할머니보다 눈물이 깁니다.
바쁜 일 있는 척 먼저 빠져나옵니다. 같이 울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또 다시 흐린 하늘, 참 길고도 지리한 겨울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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