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눈물

한희철 얘기마을(156)


할아버지의 눈물 



정작 모를 심던 날 할아버지는 잔 수 모르는 낮술을 드시곤 안방에 누워버렸습니다. 훌쩍훌쩍 눈물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달랠 수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를 심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지는 공공연히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모심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고, 흔해진 기계모를 마다하고 손모를 택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곱 자식들이 며느리며, 사위며, 손주들을 데리고 한날 모를 내러 내려오기로 했던 것입니다. 두 노인네만 사는 것이 늘 적적하고 심심했는데 모내기를 이유로 온 가족이 모이게 됐으니 그 기쁨이 웬만하고 그 기다림이 여간 했겠습니까.


기계 빌려 쑥쑥 모 잘 내는 이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논둑을 고치고 모심기 알맞게 물을 가둬놓고선 느긋이 그날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런데 모심기로 약속한 날, 정작 모심으러 들어온 건 둘째 딸네뿐이었습니다. 모두 온다고, 오겠다고 전화론 그랬는데, 그런 전화 믿고 자랑도 했고 일꾼도 그만큼 적게 맞췄는데 결국은 둘째 딸네뿐이었던 것입니다. 


속상한 할아버지 마음 말 안 해도 알기에 술 드시는 할아버지를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마음 위로하듯 하루해론 벅찬 일을 벅차게 해냈을 뿐입니다.


모심기 전날 밤, 신작로 곳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식들 밤늦도록 기다리며 어둠 속 줄 담배 피우던 할아버지 모습을 본 이는 따로 없었다 해도.....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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