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얘기마을(159)
결혼식 버스
단강이 고향인 한 청년의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전화를 주기도 하는 <얘기마을> 가족인데다, 애써 주일을 피해 평일에 하는 결혼식인지라 같이 다녀왔습니다.
아침 일찍 대절한 관광버스가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잔치가 있는 날에는 의례히 대절하는 버스입니다. 한번 부르는 값이 상당하면서도 버스 대절은 잔치를 위해선 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바쁜 농사철, 게다가 애타게 기다렸던 단비마저 내려 버스엔 전에 없던 빈자리도 생겼습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차 안의 스피커에선 신나는 음악이 쏟아지듯 흘러나옵니다. 그 빠르기와 음 높이가 여간이 아닙니다. 이어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합니다. 이 바쁜 철 잔치를 벌여 미안하고 참석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말이 물결 번지듯 울려 퍼집니다.
오늘 만큼은 농사 일 잊고 신나게 놀라며 기사 아저씨는 음악을 어느 새 새것으로 바꿉니다. 저런 음악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이어 차례차례 돌아가며 노래를 부릅니다. 치화 씨 차례가 되었을 때 치화 씨는 그럴 듯이 내리깔린 목소리로 노래를 뽑았습니다.
“고요-오한 내 가슴에 나비처럼 날아와서 사라-앙을 심어놓고 나비처럼 날아간 사람”
군데군데 가사가 바뀌고 받침이 빠진 노래였지만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가 뒤따릅니다. 신이 난 치화 씨가 망설임 없이 다음 곡을 시작합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따뜻한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게 치화 씨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그동안 쌓아온 만남의 결과입니다. 그만큼 치화 씨는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운 샘입니다. 한 아주머니의 노래엔 마음도 아팠고, 나도 몰래 눈가가 젖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왜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다짐하듯, 왠지 모를 앙금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아주머니의 노래는 진지했고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노래가 왠지 비장하게 들려왔습니다.
여기저기 빗속 모심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요란한 춤과 노래 섞인 관광버스는 빗길을 잘도 달렸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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