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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제비집

by 한종호 2020. 12. 1.

한희철의 얘기마을(160)


제비집


사택 지붕 아래 제비가 집을 지었습니다. 며칠 제비 울음 가깝더니 하루 이틀 흙을 물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벽돌 중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용케 피해 집 자리로 잡았습니다.


언제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 두 마리의 제비는 보기에도 정겹게 바지런히 집을 지었습니다. 진흙을 물어오기도 하고 지푸라기를 물어오기도 하며 제비는 하루가 다르게, 낮과 저녁이 다르게 집을 지었습니다.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곤 했던 어릴 적과는 달리 해마다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내가 사는 집을 찾아 집을 짓다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유심히 집 짓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배운 것인지 며칠 사이로 봉긋 솟은 모양의 제 집을 제비는 훌륭하게 지었습니다.




지나가던 승학이 엄마가 제비집을 보더니 농사 걱정을 합니다. 제비집 모양이 멍석 짠 듯 고르고 예쁜 해는 농사가 잘 되지만 지푸라기들이 튀어나오고 울퉁불퉁 겉모양이 거친 해에는 논밭에 잡초가 우거져 농사를 그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사가 제비집 모양을 따른다는, 어릴 적 친정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를 제비집을 보면서 되살린 것입니다.


내 사는 집에 처음으로 진 제비집이 하필 거친 집일까, 승학이 엄마 이야기에 아쉽기도 하지만 관례란 예외가 있는 법. 내 집에 든 제비가 알 잘 낳고 새끼 잘 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시간이 될 때면 제비집을 마주 보며 놀이방 아이들에게 흥부 놀부 이야기나 재미있게 들려 줘야겠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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