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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일렁이는 불빛들

by 한종호 2020. 12. 5.

한희철의 얘기마을(164)


일렁이는 불빛들



밤이 늦어서야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속회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요즘 같은 일철엔 늦은 시간도 이른 시간입니다.


아랫작실 초입에 이르렀을 때 저만치 다리 있는 곳에 웬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웬 불빛일까, 가까이 가보니 그 불빛은 자동차에 늘어뜨려 놓은 전구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날개 펼친 듯 양 옆을 활짝 열고 줄줄이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차려 놓은 물건 규모가 웬만한 가게를 뺨칠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기발한 이동 가게였습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할머니 몇 분은 다리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들어오는 가게 차입니다. 충주에서 오는 차라니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자동차 하나 들어오는 것이지만 가게 하나 없는 동네에는 작은 장이 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속회 예배를 드리는 언덕배기 광철 씨네 집 마당에 올라섰을 때 아, 빛나는 것들! 가게 차 불빛이 여전히 번쩍이고, 서산 밤하늘엔 맘껏 늘어진 가느다란 초승달과 파란 별 두 개, 어둠 속 지워질 듯 희미하게 빛나는 양지말 집집의 불빛들. 하늘과 땅 맑게 일렁이는 불빛, 불빛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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