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93)
3분의 오묘함
그림:<지상의 집 한 채>, 황간역의 강병규 화가
추운 겨울엔 언 손을 녹이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다정한 벗이 된다. 잠을 깨우며 몸을 움직이기에는 커피가 도움이 되지만, 피를 맑게 하며 정신을 깨우는 데는 예나 지금이나 잎차만한 게 없다.
가끔 선원이나 사찰, 고즈넉한 성당이나 수행처를 방문할 때면, 혹시나 그곳 둘레 어딘가에 차나무가 있는지 먼저 살피는 버릇이 있다. 반가운 차나무를 발견할 때면, 그 옛날 눈 밝은 어느 누군가가 차씨나 차묘목을 가져다가 심었는지 궁금하고, 얼굴도 모르는 그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인다.
차나무의 어린 잎을 발효한 홍차를 우릴 때면, 찬바람이 부는 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군불을 지피는 풍경이 그려진다. 단풍나무 시럽이 가미된 '메이플 테피 홍차'에선 마른 장작이 타면서 나는 구수한 향을 맡는다.
찻잎을 우려내는 데 드는 3분 동안의 시간이 참 오묘하다. 3분보다 짧으면 차맛이 깊지 못하고, 3분을 넘기면 떫고 쓴맛이 강해지는 이유를 헤아리기도 하지만, 언제나 모름에서 맴돌 뿐이다.
목넘김이 걸림없이 물처럼 순하고, 마신 후 뱃속이 편안하며, 온몸에 감도는 기운이 평화로우며, 저절로 관상의 기도에 잠기게 하는 차 한 잔이 이 추운 겨울을 함께 지나는 도반이 된다.
라벤더, 캐모마일 등 대부분의 잎차와 꽃차를 맛있게 우려내는 데 가장 알맞은 시간도 3분인 걸 보면, 3분이라는 시간에 깃든 보이지 않는 우주의 호흡이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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