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85)
순교할 각오로
단강으로 목회를 떠나올 때, 먼저 농촌에서 목회를 시작한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농촌목회를 잘 하려면 ‘순교할 각오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농담이 아님을 이내 실감하게 됐다.
교우 가정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내 밥그릇엔 밥이 수북하게 담기곤 했다. 밥그릇도 보통이 넘어 전에 먹던 밥에 비하면 족히 배 이상이 되는 양이었다. 행여나 밥을 남길라치면 교우들은 ‘찬이 없어 그런가 보라’며 이내 섭섭한 표정이 되곤 했다.
그런 마음 알기에 밥을 남기는 일 없이 먹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젠 많은 양에 익숙해져 찬에 상관없이 밥을 제법 먹게 되었다.
순교할 각오로 먹으라. 이제쯤 생각해 볼 때 그 말은 단지 먹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에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같은 자리에 서기 위해선 어리석어 보이는 삶 또한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었던 것이다.
‘순교할 각오로 먹는’ 어리석음과 귀함. 그것은 삶의 방식에 대한 선택이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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