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87)
마늘이 매운 맛을 내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배추도 뽑고, 가을 당근도 뽑고 나면 한해 농사가 끝납니다.
그때 마늘을 놓습니다.
서리가 내리고 추위가 오지만 언제나 마늘은 늦가을, 모든 농사를 마치며 놓습니다.
찬바람 속 심겨진 마늘은 그대로 겨울을 납니다.
땅이 두껍게 얼어붙고 에일 듯 칼날 바람이 불어도, 때론 수북이 눈이 내려 쌓여도 마늘은 언 땅에서 겨울을 납니다.
한 켜 겨를 덮은 채로, 맨살 가리듯 겨우 한 겹 짚을 두른 채로 긴긴 겨울을 납니다.
마늘이 매운 맛을 내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그냥 언 땅에 묻혀 맨 몸으로 받으며 그렇게 받아들인 추위를 매운 맛으로 익혀내는 것입니다.
그 작은 한쪽 마늘이 온통 추위 속에서도 제 몸에 주어진 생명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것, 그것이 매운 맛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허허벌판 겨울을 나는 마늘을 보며 ‘매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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