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86)
저녁 연기
겨울 해는 짧습니다. 한껏 게으름 떨던 해가 느지막이 떠올라 어정어정 중천 쯤 걸렸다간 그것도 잠깐 곤두박질하듯 서산을 넘습니다.
그러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땅거미가 깔려들고 마을마다엔 흰 연기가 솟습니다. 기름보일러 서너 집 생기고, 연탄보일러 늘어가지만 여전히 쇠죽 쑤는 아궁이, 그 아궁이만큼 장작을 땝니다. 그을음투성이인 검은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라 마을은 저녁마다 흰 연기에 둘립니다.
보면 압니다. 바람처럼 쉬 사라지고 말 것 같은 저녁의 흰 연기는 어둠이 다 내리도록 마을을 떠나지 않습니다. 손도 없는 그놈들이 손을 마주 잡은 듯 둘러 둘러 마을을 감싸고 흐릅니다.
어쩜 저녁연기보다도 쉽게 떠난 자식들, 마른 가지 아프게 꺾는 주름진 손길을 두고, 저녁마다 피어나는 흰 연기는 좀처럼, 좀처럼 마을을 떠날 줄 모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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