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210)
딱한 행차
저런 저런
저 딱한 행차 좀 보게
찬바람 부는 겨울 길
가장자리 잰걸음
안 그런 척
허리춤 꿰차고 가는 비료 부대가
말로 듣던 그 쌀부대 아닌가
읍내 다방 드나드는 재미에 빠져
집안 쌀 다 퍼 나른다더니
바로 저 모습일세
신사 아니랄까
시커먼 와이셔츠 구닥다리 넥타이
새끼 꼬듯 매긴 맸다만
시중드는 아가씨
제 몸 이뻐 그러는 줄 정말인줄 아는가 부지
들고 가는 저 쌀이 무슨 쌀인데
남 안 지는 거름지게
허리 휘게 날라 진
노총각 두 아들 품 팔아 받아온
땀 같고 피 같은 쌀 아닌가
일도 없는 한 겨울 넘겨야 할 양식 아닌가
한 톨이라 잃을까 조심으로 일어야 할 쌀을 들고
가느니 읍내 다방
아주 늙어 그런다면 망령이라 말겠지만
맨 정신인기여
저게 막대기지 사람인겨
뒤통수 박히는 따가운 욕
뒤돌지 않으면 피할 심산인 듯
잰걸음 이십 리 읍내 다방
앞만 보고 달려가는
딱한 행차.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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