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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생일 축하 엽서

by 한종호 2021. 4. 28.

 

 



"아빠, 할머니 생일은 생신이라고 하는 거야?" 

 


어디서 들었는지 소리가 엽서 하나를 챙겨들고 와선 '생신'에 관해 묻습니다. 내일 모레가 할머니 생신, 소리는 엉덩이를 하늘로 빼고 앉아 뭐라 열심히 썼습니다. 썼다간 지우고 또 쓰고 그러다간 또 지우고, "뭐라 쓰니?" 물어보면 획 돌아서선 안 보여주고. 


며칠 뒤 굴러다니는 봉투가 있어 보니 소리가 썼던 할머니 생일 축하 엽서였습니다. 할머니가 분명 고맙다 하며 엽서를 받았는데 웬일인가 알아보니, 그날 엽서를 쓰다 잘못 써서 다시 한 장을 더 썼던 것이었습니다. 엽서에는 연필로 쓴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라고 쓴 엽서는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


기껏 할머니 생일을 생신으로 물어 쓴 끄트머리에 가서 '소리 규민 섰(썼)다'라니, 아마도 그 때문에 엄마한테 퇴짜를 맞고 다시 쓴 모양이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라는 글을 보고선 한참을 웃었습니다. 웃다 말고 드는 생각이 진짜 생일 축하 엽서는 제대로 고쳐 써 할머니께 전해진 그 엽서가 아니라, 잘못 써서 퇴짜를 맞은 이 엽서일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추석 집에 들르면 잘못 쓴 엽서를 다시 전해드릴 작정입니다. 할머니께 드리는 어린 손녀의 웃음, 무엇보다 그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겠기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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