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月25日 이른 아침, 원주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엔 춘삼월에 어울리잖게 세찬 눈발이 휘날렸다. 이따금씩 비취는 햇살에 현란함을 더한 춘설은 창가보다는 창가에 기댄 가슴으로 부딪쳐 왔다.
첫 목양지로 향하는 빈 가슴이 오히려 든든했다. 내 떠남을 춘설로 기억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고마웠다. 그 길밖엔 없었다.
강원도행이 좌절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와 몇몇 선배의 얼굴이었다. 지금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여 나는 무조건 떠나야 했다.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마련된 그 자리로 떠나는데 자존심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한 공동체가 잃어서는 안 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였다.
황동규의 시구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친구야, 그리고 선배님들, 더 이상은 마십시오. 모두 저를 위한 격려임을 알지만 더 이상은 단강에 대해 염려를 말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변경할 수 없는 사실, 내가 단강에 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제부터 저는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약속하며 마련해준 따뜻한 배려, 그것이 제게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저는 그것 아닌 것들과 싸워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마주해야 할 것은 불편함과 부족함일 것입니다. 넌지시 지켜봐 주십시오. 누구보다도 당신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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