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잊지 못할 일 중의 하나는 배급식량이었다. 강냉이 죽, 우유가루, 빵 등을 우린 학교에서 얻어먹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얻어먹는 맛에 즐겁기만 했던 원조 식량들, 그건 먼 나라에서 보내온 구호식품이었다. 넉넉지 못한 양식, 왠지 모를 배고픔을 우린 원조식량에 의지해 한껏 덜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5학년 때였을 게다. 그때 우리에게 지급된 구호식품은 가루우유였다. 커다란 종이부대에 담긴 구호식품 우유가 나오면 우린 한 봉지씩을 나누어 받았다. 양은그릇으로 하나씩 나누어 주는 일은 반장인 내 몫이었다.
차례대로 한 사람씩 우유를 퍼 주다보니 자루가 점점 줄게 되었고 나중에 자루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몸을 옆으로 숙여 깊숙이 손을 집어넣고 우유를 펴내느라 애쓰고 있을 때 선생님이 다가오셔 내 옷을 힘껏 걷어 올려 주셨다. 걷느라고 걷어 올린 옷에 우유가루가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느꼈던 당혹감이란. 그때만 해도 목욕을 자주할 때가 아니었다. 그저 물을 데워 부엌에서 대강 때를 밀어야 했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팔뚝의 때란, 세수할 때 물 닿게 되는 부분을 경계선으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기가 일쑤였다.
아무 예고 없이 몸을 드러내야 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난 아직도 당황하곤 한다. 숨겨놓은 때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아 있지 싶다.
언제 어느 때 누구에게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을 활짝 열고 싶은 건 마음뿐. 늘 그 일에 두려움이 앞서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배급식량을 퍼내다 선생님에 의해 드러난 팔뚝 위의 때, 그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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