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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새벽 세 시, 박 기사님

by 한종호 2021. 12. 9.



새벽 세 시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전화를 걸면 자다가도
언제나 곧장 달려오는 박 기사님이라고 있단다

그런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단다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우리들 삶의 둘레에 없진 않아서
24시간 대기 중이신 소방관, 경찰, 긴급출동서비스 기사님처럼 고마운 분들이 없진 않으나

하지만 우리 동네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단다

생각을 한 땀 한 땀 이어보아도
그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 세 시에 이웃을 위해서
잠든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이 아득히 궁금해진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어디든 함께 하신다는 

성경의 하느님 말고는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다

너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지 않고선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지 않고선

잠든 새벽 세 시에
곧장 달려올 수는 없는 일이다

너희가 부르기만 하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참 쉬운 하느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참 쉬운 하느님처럼

그런 박 기사님이
우리 동네에 칠순이 넘도록 살고 계시단다

뵈오니 울 아버지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닮으셨다
나는 뵙자마자 아버지처럼 모시기로 한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부를 때는 
그냥 박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박 사장님은 우리집 지붕부터 바닥까지 다 해주신다
안 되는 일은 되도록 다 이끌어 주신다

어릴 때 집 마당에 남동생과 나란히 앉혀 놓고서
목에 두른 보자기를 빨래집게로 찝어서
똑같이 바가지 머리로 잘라주시던 울 아버지처럼

6학년이 될 때까지 
손톱깎기 누를 손힘이 모자라서
손톱 발톱 다 깎아주시던 울 아버지처럼 

박 사장님은
우리집을 다 손봐주고 계신다

나는 박 사장님만 나타나시면 좋아서
아기새처럼 팔짝팔짝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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