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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빛고을 광주, 5월이면 붉은 꽃 하얀 꽃

by 한종호 2022. 5. 1.



5월이면 우리 마을 집집마다 담장에는 붉은 장미가 피어나고 이어서 손꼽아 사나흘 뒤면 마을 뒷산으로 "뻐꾹", 뻐꾸기가 찾아온다. 우리 마을엔 그렇게 해서 초여름이 시작된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서야 4·19와 5·18에 대한 의문점들에 대하여 다시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씩 역사의 퍼즐이 맞추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부산의 한 인문대로 진학한 후로 과방에서는 늘 한겨레 신문만 펼쳐져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믿고 읽는 출판사는 창작과 비평사, 문학과 지성사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하지만 최근에 본 한겨레도 전처럼 믿음직스럽지는 못하다. 

10억의 인세비를 자신의 안일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으시고, 돌아가신 후 마을 사람들에게 가난한 책 할배로 남으신 권정생 선생님이 그래도 한겨레를 믿고서 마지막 유언에서 한겨레 신문을 통해 북한과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사후 기부 의사를 남기셨는데, 한겨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권정생 선생님은 하늘의 별이 되셨지만, 어린이 서적 분야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였던 <강아지똥>과 TV 드라마가 된 <몽실 언니>와 수많은 저서들이 이 땅에 남아 있지 않은가.

창비의 백낙청 명예편집인의 최근 이야기와 생각들에선 여전히 푸른 청년의 기백이 느껴져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된다. 마치 고목에서 돋아나는 새순을 바라볼 때의 느낌처럼 반갑고 기쁘고 고맙고 참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가신다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의 필자도 비교적 진실에 열려 있으려고 하는 어린 지성인이면서, 하늘이 열리는 10월, 땅에서 대동제가 열리면 '꽃다지'의 노래를 부르며 거리 행진을 나서던 민주화학생운동의 여운이 조금은 남아 있던 마지막 학번이 아닌가 싶다. 

이후로는 학부제가 시행되면서 후배 1학년들은 또 한 번의 학과 입시를 치뤄야 했으니, 우리 학번 만큼은 사유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나 역시도 역사의 진실에 대하여 몰라도 너무도 몰랐다. 

진실과 사실에 대하여, 군사독재정부로부터 공평하게 언론 차단이 된 한 명의 시민이었다고 하면 핑계가 될까? 언론 개혁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가 한반도를 덮고도 남는다.

부산이 고향인 내게, 2016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박근혜 후보의 선거용 전단지 얼굴을 거실벽에 붙여 놓으시고 날마다 흐뭇한 경의를 표하셨고, 그리고 테레비에서 뉴스가 나오면 어릴적부터 자라오면서 들었던 말, 전라도 사람들은 빨갱이라 하셨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번 만큼은 아니다 싶어서 그동안의 긴 침묵을 깨고서, 곁에 계신 친정엄마께 몇 달에 걸쳐서 일인 선거운동을 하였다. 엄마도 기차 좌석에 구둣발 올린 사진을 보시고선, "그라면 안 되지" 바른 말씀을 하셨다. 이제는 됐다 싶었다.

그런데 선거 당일날 종일 전화연락두절이던 엄마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너거 아부지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윤석렬이 찍었을끼다.", 어떤 부산 청년은 선거 당일날 부모님의 주민등록증을 들고서 아예 서울로 올라갔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런 방법은 생각조차 못한 미련둥이다. 

그 뒤로 나는 애써 괜찮은 척 해도 속마음은 삐졌고, 안 그런 척 그냥 넘어가려고 하다가도, 똥오줌도 못 가리고서 공정과 상식에 툭툭 구둣발을 올리는 윤석렬 일당들 소식을 보면, 누르고 있던 가슴에 탁탁 불이 붙어서 지금까지도 늙으신 노모한테까지 속으로 삭히던 타령이 불쑥 삐져나올 때도 있다. 그러면 집안 싸움으로까지 번지다가 꺼지다가. 그만큼 나도 인간이 덜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까지 하는 경상도 사람인 것이다. 

일명 윤석렬 홧병같다. 그리고 처방은 윤석렬 탄핵 말고는 없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하니 큰일이다. 갈수록 해도 해도 너무 해대니까. 마치 권력과  맘몬 괴물의 최후의 모습을 최대한 다 끌어올려서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감옥 갈 일당들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서 그 자리에 올랐으니 오죽하랴. 옆에 있는 나보다 스무살이나 어린 청년의 말에 "그래, 그래"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엄마가,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데요."

우리 어머니처럼, 남동생처럼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정치 종교 권력과 언론으로부터 조작되고 각인된 거짓이란, 이토록 죽는 날까지, 죽고 나서도, 속고 또 속고 또 속아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내 가족과 내 친지와 이웃들인 것이다.

대선이 한창이던 올해 초 겨울부터도 경상남북도 일대의 거리에는 분홍색의 선전용 플랜카드가 일제히 국힘당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거짓말의 대기권 안에서 노인들은 마스크도 없이 속수무책 호흡기로 전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된다. 마스크가 되어주어야 할 공영방송사 언론이 한겹 마스크 만큼도 안 되는 수준이 곧 대한민국 언론의 실상인 것이다.

지금 현재 지방선거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커다란 건물 외벽마다 불그스름한 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붉은 장미와 닮았지만 얼굴빛에서 악취가 난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추종하는 머리가 그러하니 저절로 기대를 접게 되는 것이다.

영화 <택기운전사>의 장면들이 겹쳐진다.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잔상들 몇 가지가 지금도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몰랐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광주에서 탱크가 땅에 누웠는 사람의 몸 위를 밟고 지나가고, 하늘에선 시민들 머리 위로 무차별 총격이 퍼붓는데도, 교복 입은 여학생을 개처럼 끌고 가는 백주대낮의 군인들, 그런데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배우 송강호의 시선을 따라간, 동 시간대 옆 동네 진주 터미널은 내 어릴 적 본 풍경 그대로였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듯. 거기서 내 숨은 멎는다.

전두환 군부가 거사를 치르기 전에 이미 광주로 통하는 모든 전화, 통신, 방송, 언론을 바늘구멍 하나까지 전원 차단하여 외부와의 소통을 미리 단절시킨 것이다. 그 사실이 놀랍다. 대한민국 언론은 다 숨 죽어 있었다. 

같은 시기에 극동방송국 설립자인 김장환 목사는 전두환과 종종 식사를 나누며 교회조직의 사익을 챙겼고, 시대와 약자의 아픔과 정의에는 등을 졌다. 그렇게 시대와 권력을 시종일관 따르며, 대선 직전에는 김명신(건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권력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80% 정도는 언론사 사장들이 그대로 대물림이 되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독재살인마 전두환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순자는 배우자 전두환이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망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출판사 시공사의 대표가 전두환의 장남 전재국이라니. 

시공사는 어린이 출판사로도 매출이 높은 곳이다. 부친 전두환의 추징금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는 부를 창출하고 있는 곳일 테지만, 민주시민들의 피를 빨아먹고서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들 흡혈가족은 여전히 뻔뻔하다.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들처럼. 그래서 해마다 돌아오는 5월은 이 땅에서 붉은 달이 된다.

내 어릴적 텔레비만 켜면 나오던 얼굴, 옆 모습을 찍으면 기자 목이 달아난다던, 이순자를 윤석렬이 취임식 참석자 명단에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제 4월 30일 소수의 대학생진보연합의 대학생들이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 집회를 하며 그 사실을 알리는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이날은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로부터 끌려간 날이기도 하다. 검찰을 통한 조작수사가 움직인 것이다. 참 나쁘고 나쁜 짓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4·15 대검찰청 기자회견실에 진입한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개처럼 끌고 나오던 공권력의 영상을 지우고 가리는데만 혈안이 되었던 언론의 실체가, 지금 현재 주요공영언론방송사의 80%가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여전히 그 악습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확연히 드러난 사실에 대하여도 그 진실을 숨기려 필력과 사력을 다해 온갖 각색과 채색과 편집까지 하고 나서며 권력에 굴종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광주민주항쟁의 실상과 그에 대해 군사력까지 동원해 학생 시민들을 강제탄압한 전두환 군부독재의 실태를 세상에 알린 건, 독일 기자 한 명이었다. 그마저도 사진과 영상 기록이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하늘이 하는 일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 그 시절이 아니다. 

저마다 손가락 하나로 대통령을 뽑을 수도 있고, 
저마다 촛불 한 자루로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도 있는 나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과국이 우리 대한민국, 지금 이 세상이다.

여기저기 드러나는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애쓰는 
주요 공영방송언론사들의 춤은 과연 누구의 장단에 맞춘 것인가? 보기에 애처럽도록 온통 헛발짓과 헛손짓이다. 

우주의 심장과 지구의 바람이 부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고서, 권력과 자본의 장단에 맞추려 애쓰는 그런 부자연스러운 언론인들의 노래와 춤이 이제는 보고 있고 있기에도 민망하고 안쓰럽기까지 한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니지 싶다. 취사선택으로 대응하고는 있지만, 아예 차단을 시키진 않고 여전히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다.

춤은 살아 있는 심장의 리듬과 자연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때 아름답게 다가오는 몸짓이다. 물이 거꾸로 흐른다거나 어디가 막혀서 고인다고 생각해보라. 

이제는 누구든 1인 뉴스 보도도 가능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단지 깨어서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스스로의 가슴을 거울 삼아서
자연과 진리를 등불 삼아서

걸음 걸음마다 깨어서
숨쉬는 순간마다 평화롭게

다만 내 가슴이 가리키는
그 숨을, 별을 놓치지 않으려

시외버스터미널 그 복잡한 시장통에서 
엄마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으려
꼭 붙드는 어린 아이처럼

하늘의 옷자락 끄트머리
그 한 점 별빛 하나 놓치지 않으려

내 어둔 가슴이 가리키는
내 어둔 가슴에 켜진
한 점 별빛을 바라보면서

단지 깨어서 숨만 쉬기로 한다
푸른 하늘을 닮은 평화의 숨을

이 땅에 평화의 촛불이 타오를 수 있는 건
하늘이 끊임없이 내뿜는 숨을 먹고서
이렇게 타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
더불어 같이 걸어가면 발걸음도 가벼운 길이다

<대학생진보연합>의 
깨어 있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이건 살아 있는 가슴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자연의 소리다.
5월의 신록이 자라나는 소리
발밑 보도블록 틈새마다 풀이 돋아나는 소리
담장마다 붉은 장미가 피어나는 소리
뒷산 뻐꾸기처럼 반가운 소리

빛고을 광주, 5월이면 붉은 꽃 하얀 꽃
집집마다 제사가 있다고 한다. 

2022년 3·9 대선 직후 안동에 계시는 안동대학교 임재해 교수님이 페북에 올리신 짧은 한 마디가 잊혀지지 않고 내 가슴에서 맴돌다가, 이제는 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대로 옮기면,

<고맙고 송구스러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호남지역 주민들에게
전혀 호응 못한 영남인으로서 가지는 솔직한 마음이자 부끄러운 생각 - 임재해 교수님의 페북에서(무허가 풀씨)

안동이란 어떤 지역인가. 역사적으로도 골수 영남학파의 지역이자 한나라당이 뿌리를 내린 땅이 아니던가. 윤석렬이 처음으로 내방하리라는 윤씨 본가가 있는 지역. 그런 곳에서 별빛을 본 듯 반가운 임재해 교수님. 

학창 시절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과목은 민속학이었다. 졸업 후 처음 만든 홈페이지가 <세시풍속과 24절기>였으니, 더욱 반가웠던 건, 권정생 선생님의 저서와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책에서 종종 만나오던 반가운 이름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5월이면 붉은 장미와 뻐꾸기 소리에 마음을 두었는데, 이제부터는 해마다 돌아오는 5월이면 빛고을 광주도 함께 가슴에 품기로 하였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또 고마운 마음으로 붉은 꽃 하얀 꽃을 품기로 하였다.

그 옛날 광주 동광원에 잠시 머무시던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광주'라는 이름을 두고 순우리말로 되새겨주신 분이다. 광주, 그 이름이 바로 '빛고을'이다.

빛고을, 그 이름 그대로 정말로 광주는 이 땅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빛낸 마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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