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8)
씻을 수 없는 죄
"주(主)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數多)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罪惡)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예레미야 2:22).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찬송가의 가사다. 부흥회나 기도회에서 그 중 즐겨 부르는 찬송으로 대개는 뜨겁게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찬송을 부른다. 그렇게 간절하게 부르면 찬송가의 가사처럼 마치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 것처럼.
이 찬송을 부를 때 우리가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아프게 인정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나의 죄를 씻기 위해 내 대신 누군가가 당한 고통과 수치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죄를 저질렀더라도 죄를 자복하기만 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 복음이지만, 죄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어딘가 나의 죄와 상관없는 곳을 찾아 뜨겁게 찬송을 부르고,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눈물 콧물을 흘려, 모든 죄를 용서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만 하면 더 이상 지난날의 죄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런 시간을 갖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죄로 인한 무거운 부담감이나 꺼림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든지 감내할 만한 것이 된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을 누군가를 만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쉽고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가 지은 죄는 그런 과정을 통하여 없어지는 것일까? 몇 가지 통과의례를 거치면 정말로 죄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일까?
오늘 본문은 죄가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잿물로 씻고 수다한(수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죄악이 주님 앞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어릴 적 잿물로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비누로 잘 지지 않는 때도 잿물에는 졌다. 어린 마음에도 잿물은 세상의 어떤 때라도 지울 수 있는, 비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세제라 여겨졌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리 많은 세상의 비누를 쓴다고 하여도, 심지어는 잿물을 동원한다 하여도 죄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아무리 하나님 아닌 것들을 하나님으로 섬긴다 하여도 그 신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씻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 아닌 것들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수다한 비누와 잿물을 동원한다 하여도 죄는 주님 앞에 그저 남아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세상의 비누와 잿물로 씻을 수 없는 죄가 있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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