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7)
존재의 원칙, 나(우리)대로!
- <교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 1935년 4월,
<교회와 우리의 관계> 1935년 7월 -
살다보면 별 사람을 다 만나는 법이다. 나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 적대감을 가진 사람, 무관심한 사람, 비웃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온전히 이해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호의를 가지고 계속 다가오는데, 정말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경우이다. 선한 의도와 애정을 생각하자니 무심할 수 없는데, 내 주장이나 의도를 정말 잘못 알고 자꾸 함께 하자하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다.
『성서조선』을 통해 ‘무교회’의 주장을 꾸준히 이어오던 김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무교회의 소명을 열심히 읽어주는 것은 좋은데, 조선 구석구석 필부까지도 성서를 스스로 읽고 그 핵심이 되는 정신으로 살아낼 날을 꿈꾸는 그의 소망을 함께 품어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한 ‘열혈’ 독자가 김교신에게 제안을 해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편지로 전하는 장 아무개 목사의 제안인 즉, 이제는 교회 비판을 좀 덜 하고 오히려 교회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무교회’를 전국적 사업으로 확산하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적으로 함께 할 터이니 함께 손을 잡고 성서지식 보급 사업과 전도 사업을 전국구, 아니 나아가 세계적으로 추진하자는 구체적인 기획안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가 조직력을 통해 홍보를 해주고 교인들에게도 참여를 권해야 할 터이니 이제 교회를 향한 날선 비판은 그만하라는 조언도 함께 전했다. 이런 조직적 사업을 전개하지 않았던 까닭에 무교회 모임이 오늘까지도 그 모양이 아니냐는 은근한 비난과 함께 장 목사는 자기 말대로만 한다면 “성조지가 대신문이 되고 야학이 대신학이 되고, 성서조선사 내에 외국전도국이 있을 것을 투시하고 확신”한다고 했다.(1935년 4월 22일 일기)
그러고 보면 김교신도 참 다정한 사람이다. 무교회를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하고 이런 황당한 제안을 한 이에게 정성껏 답장을 하다니. 하긴 “속히 회답하라”는 편지 내용을 무시하고 휙 던져놓자 하니 책임감 강한 그 성격에 마음의 불편함이 컸을 것이다. 사적 답신의 내용은 세세히 알지 못하나, 김교신이 이에 대해 언급하며 성조지에 쓴 글이 <교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교회와 우리의 관계>이다.
김교신과 무교회 신앙인들이 조직을 갖춘 교회에 불신을 갖는 이유는 현재의 교회 조직이 타락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직’ 그 자체의 작동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마 교회 조직의 효율성과 전달 네트워크의 힘을 몰라서 무교회적 에클레시아를 선언했겠는가! 김교신과 무교회 신앙인들이 전국적, 세계적 차원의 사업을 벌일 양이었다면 어찌 그들이 ‘무교회’적 정신과 원칙을 자신들 신앙공동체의 존재방식으로 삼았겠는가? 한참 오해를 한 장 목사를 비롯하여 여전히 무교회 정신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김교신은 이렇게 재차 강조했다.
개인으로 접하여 성도 같고 강단 위에 섰을 때에 천사 같아서 언언구구 청중을 감동시켜 마지않던 목사도, 단하에 내리는 순간부터 가로에 방황하는 걸인의 태도를 버리지 못함은, 온전히 고용살이하도록 만들어 놓은 교회의 기관과 조직의 탓인 줄 안다. 이 점에 있어서 교회라는 관념이 세상 것과 우리 것과는 판이한바 있다. ‘비교회’적 혼백이 단단한 것이 우리 속에 있다. … 소도시보다 대도시로, 향촌보다 서울로, 소기관보다 중앙기독교청년회 같은 풍유한 지반으로 진출 장악함에는 필연코 세력이 있어야 한다. 세력은 결당에서 속성되고 작당은 전제적이라야 그 운용이 민활하니 … 이런 고로 우리는 현 교회의 근본기구에 일치할 수 없는 자이다.
실은 이런 경우가 제일 허탈하고 기운이 빠진다. 70여 호가 넘도록 성조지를 통해 무교회 신앙인들의 기본 정신과 핵심 내용을 그리 절절하게 전했는데, 무교회 공동체의 존재방식에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과 기획을 ‘무교회적 열정’으로 제안하다니! 백 번 화가 나고 속상할 일이나 김교신도, 성조지 애독자들도 참으로 순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현세의 달콤한 평화의 맛을 못 보는 섭섭함은 있을지나 영원한 주님의 평화를 위하여 가던 길을 돌리지 말고 그냥 담대했으면 이것이 제 길일까 하옵니다”라고 소감을 밝힌 이도 있었고, “장 목사가 그 진애의 충성의 귀하신 사역자일진대, 교회 밖에 서서 교회에서 싫증이 나서 할 수 없이 뛰어나와 방황하는 영들을 위하여 충복이 되시도록 하옵소서.” “성조는 성조 그대로, 장 목사는 그 형편과 또 지금껏 싸우시던 정신 그대로 조선에 남기소서.” 부탁하는 이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각자 소명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로 공통된 태도를 모을 뿐, 장 목사의 오해를 비난하지 않았다.
이 또한 배울 바이지 싶다. 어찌 모두가 다 나 같고 우리 같아야 하겠는가? 현행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읽는 방식이야 같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답조차 같으라고 강요할 수 없지 않은가? 감리교회 안에 머물며 최후의 10인이라도 의인이 있다면 이 교회를 살려주시겠냐고 안타까이 기도한다는 한 ‘교회’ 교인은 그럼에도 당시의 ‘조직’교회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교회는 벌써 해골이 되어, 성령이 행할 수 없는 굳은 돌멩이가 되어 대강(大綱)이 그릇되었사오매 이제 그 지엽(枝葉)에서 무엇을 한다는 일이 사실로 이론과 실제가, 추상과 실현이 다를 것을 예측하셔야 하겠습니다. 지금 교회를 부흥시킨다고 하는 일도 이론에 불과합니다. 사실로 접하여 볼진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짐과 같은 형편이올시다. … 현 교회는 선생님들 같은 분을 용인할 필요도 없으리만큼 생명이 무디었습니다. … 소제가 지금 감리교회 중에서 이래 싸워 오는 중이오나 원래 기독교와는 상거(相距)가 먼 데요, 일개 종교 유희 단체가 되어서 그런 유희의 능란한 자가 아니고는 선생이고 성서고 천사고 소용없이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아아, 어쩌면 좋을까? 1935년의 탄식인데 마치 오늘의 교회를 바라보는 평신도의 애통함을 읽는 것 같이 익숙하다. 가장 서글픈 구절은 교회가 “성령이 행할 수 없는 굳은 돌멩이”가 되어 생명이 무디었다는 평가이다. 성서는 사람의 심령이 완악하거나 지치고 상했을 때에 성령과 교통하기 힘들다고 전한다. 김교신의 때나 지금이나 ‘조직’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령과 교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필시 ‘완악함’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 성령의 교통함이 막힌 사람들은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살아라!’라는 가장 기본적인 창조명령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만큼 반(反)생명적인 세상에서 ‘살아남느라’ 지치고 상한 심령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행 교회의 반(反)성서적, 반(反)하나님적 행보에 어찌 ‘아멘’하며 따라 가겠는가! 그러나 김교신의 때도, 이때도, 아니 유대 예언자들의 때에도 완악하고 상한 심령은 언제나 성령과의 교통을 방해했다.
과거 77호까지 아무리 기를 쓰고 악을 써서 외쳐 보았어도 우리는 이스라엘 역대의 선지자들 이상으로 외칠 역량이 없음을 자각하였다. 교회의 탁상과 교권자들의 궤변에는 사자보다도 우렁차게 외친 모세의 율법, 다윗의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등의 질책과 사도들의 교훈과 주 그리스도 자신의 날카로운 외치심이 진동하고 있어도, 교권자들의 고막을 흔들기에는 마태복음 23장도 오히려 약할 뿐이요, 예레미야의 한숨 소리도 일종의 종교 유희에 몰두하고 있는 교회인에게는 창구멍으로 새어 드는 바람 소리에 불과한 것이니, 이는 외침이 약한 까닭이 아니요, 일부러 귀를 막았거나 또는 생명이 고갈하여 감각을 잃은 자들인 까닭이다.
하여 김교신은 그저 “믿음으로써 살아 존재하고자” 결단하였다고 밝히며 글을 맺는다. “오늘과 같은 때에는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를 파악하고 존재하는 일, 그 일 자체가 사업이요 외침”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나(우리)대로’가 존재의 원칙이라는 말이다. 목소리 크게 외칠 것 없고, 큰 조직으로 맞설 것 없이, 작지만 존재감 있는 공동체로 살아내겠다는 결심이다. 『성서조선』은 『성서조선』대로 그 사명을 다하겠다는 선언이다. 덩치 큰 괴물을 잡겠다고 우리도 몸뚱이를 불리다보면 우리 역시 괴물이 되지 않겠느냐는 경고다.
자기 자리에서 곁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고 진리를 살아내는 삶을 ‘나답게’ ‘우리답게’ 실천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반(反)생명적 시스템에 포섭당하지 않으면서 작은 숨구멍이라도 내겠다는 말이다. 그걸 나도 하고 너도 하고, 그렇게 제 자리에서 자기 난대로 소신대로 성서의 메시지를 붙잡고 살아내다 보면 저 시스템도 결국은 무너지지 않겠느냐는, 그래서 가장 절망적인 듯한 교회 현실 한 가운데서, 이 글은 실은 희망을 노래한다고 믿는다. 나 또한 이 땅에 진정한 에클레시아‘들’이 봄 날 쑥처럼 쑥쑥 올라와 대지를 덮게 되는 그날을 희망하며, ‘나대로’ 살아내려 한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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