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인문학 산책(11)
느려도 옳게 가는 것이 진정 승리하는 길
여섯 마리의 말이 눈을 찔린 사건을 실화로 삼은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Peter Shaffer)의 작품 <에쿠우스(Equus)>는 심리극이다. 한 소년이 엄격하고 교리적인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와 억압이 말에 대한 기이한 복수로 나타난 사태를 놓고 파고드는 이 연극은, 이성적 설명으로 해석이 가능하지 않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현실을 짚어내고 있다.
‘에쿠우스’가 ‘말’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라고 한다면, ‘아반떼’는 ‘전방’ 또는 ‘앞으로 돌진’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연극으로 유명해진 ‘에쿠우스’라는 단어는 그러나 오늘날 자동차의 이름으로 더 대중화되어 있다. ‘아반떼’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 모두 ‘달린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그 자동차의 제작사인 현대의 저돌적 경영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단, ‘에쿠우스’는 대형차이고 ‘아반떼’는 소형차라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2006년 ‘에쿠우스’를 타고 다니면서 기업제국의 황제로서 살아왔던 정 현대차 회장이, 당시 ‘아반떼’를 타고 구치소로 돌진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현실은 우리가 살면서 과연 제대로 달려 들어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일깨우고 있는 것만 같다. 기껏 열심히 달렸는데 목적지가 그런 곳이라면 누구보다 앞서서 뛰어간다는 것이 허망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중세 기사도와 관련된 로맨스의 대부분은, 백마를 탄 기사가 달려와 위험에 빠진 여인을 구하는 결말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노라”가 그 이야기의 종지부로 등장한다. 그러고 보면, 큼직한 대형차 ‘에쿠우스’를 타고 힘차게 앞으로 ‘아반떼!’ 하면서 돌진하는 것은 오랜 인류의 갈망과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신분의 상승이고, 성공의 확인이며 사랑을 획득하는 영웅의 등장과 같은 것이다.
By Wallace Worsley (The Hunchback of Notre Dame, 1923),Wikimedia Commons
하지만,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구한 것은 그를 잠시 연모했던 말을 탄 장교가 아니라, 모두의 멸시를 받아온 콰지모도였다. 에스메랄다는 파리의 사나이 모두에게 음침한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콰지모도에게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진실한 사랑의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성문 밖의 민초들에게 에쿠우스의 주인이 곧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이라고 여기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빠른 것이 이기는 것이고, 큰 것을 얻는 것이 성공의 징표라는 논리는 사실 어설픈 주장에 불과하다. 느려도 옳게 가는 것이 진정 승리하는 길이며, 남들이 볼 때 크지 않아도 자신에게 진실로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성공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걸 알지 못하면, 우리는 정말 기를 쓰고 달려갔으나 파멸의 문을 여는 자가 될 수 있으며 그 긴장과 스트레스가 너무도 심해 말의 눈을 모조리 찔러버리고 마는 소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날이 초여름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들판을 달리고 싶은 계절이다. 산에 올라 하늘과 마주 대하고 싶은 시간들이다. 강을 건너 저편 마을로 가서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한 때이다. 그런 우리의 앞날에 진정으로 성공하는 문이 열렸으면 좋겠다. 막상 목표지점에 도달해보니 바라지 않았던 엉뚱한 문이 열리는 그런 불운은 겪지 않은, 뜨거운 감사가 주어지기를….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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