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림으로 만드는 평화

머뭇거림으로 만드는 평화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고후13:11)

대대로 우리의 거처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 주간 동안도 평안하게 지내셨는지요? 맑고 청명한 대기가 우리 마음속 우울함을 조금은 덜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는 아주 오랫동안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입니다. 잊고 계신 것은 아니지요? 그리스도인 됨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만 국한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상기시키는 이들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거룩의 세계를 가리켜 보여야 한다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욕에 길든 우리는 자신이 순례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욕망의 거리를 바장입니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려면 신앙의 길을 걷는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비대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그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다는 사실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나날입니다.

가을입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조금씩 물드는 모습을 지켜보면 영문을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찾아옵니다. 열흘 붉은 꽃도 없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실감 나는 나날입니다. 강둑에 앉아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있노라면 아늑한 고요함이 물결처럼 번져옵니다. 문득 어린 시절에 부르곤 했던 동요들이 떠올라 가만히 불러봅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평화롭지만 쓸쓸한 정경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즐겨 부르던 동요는 대체로 쓸쓸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섬 집 아기’, ‘겨울나무’, ‘엄마야 누나야’ 등이 다 그렇습니다. 아기를 혼자 놔두고 섬 그늘로 굴을 따라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에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부는 나무도 그렇지요.

동요는 아니지만, 이은상 선생님이 가사를 쓰고 현제명 선생님이 곡을 만드신 ‘그 집 앞’이라는 곡도 떠오릅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이 머뭇거림, 망설임을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답답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습니다.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의지적인 행동이 아니라 비의지적인 행동입니다. 그 속에 애틋함이 있습니다. 서슴없이, 당당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대세처럼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이런 은근함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나이 듦의 징조일까요? 어쩌면 너무나 난폭하게 흘러가는 세상에 지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몬느 베이유는 우리가 사랑 가운데서 서로를 대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머뭇거림’(hesitation)이 그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고, 응대하는 이들은 시원시원해 보일지는 몰라도 삶의 많은 부분을 놓치게 마련입니다. ‘달의 이면’이라는 말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파악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고, 그건 사람 살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살자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을 아주 몹쓸 사람으로 몰아붙이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 가을에 이런저런 동요가 떠오른 것은 우리의 거친 세태에 대한 피곤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가을이면 각 교단 총회로 시끄럽습니다. 영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총회 때문에 설왕설래가 많습니다. 총회는 각 교파의 지향과 정책을 결정하고 교단을 이끌어갈 리더를 뽑는 것을 주된 소임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지향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이 시대의 문제들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심도 있게 논의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총회는 그 기본적인 직무를 내팽개친 채 정치꾼들의 무대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음성을 높이는 이들은 다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영 논리에 가담하는 순간 참을 향한 순례는 중단되고 맙니다. 교권을 쥔 이들의 단일한 목소리가 다양한 소리를 압도할 때 진리는 잦아들게 마련입니다. 동일한 소리를 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하려하고, 그들에게 불온의 딱지를 붙여 침묵시키려 할 때 교회는 퇴행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교리나 예배 방법의 차이가 우리들의 일치를 가로막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꼭 갈라설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묻습니다. 

“비록 우리가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서로 사랑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비록 한 가지 의견으로 통일되지는 못한다 해도 한 마음이 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작은 차이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연합되어 있습니다. 서로간의 차이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선행과 사랑에 있어서 서로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웨슬리 설교전집3>, 설교 ‘관용의 정신’중에서, 기독교서회, p.61)

누군가를 동화시키려는 것, 자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차이는 잠시 놓아두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선행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과잉 대표하는 정치 문제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고 있습니다. 서로를 부정하는 거친 말이 오고 가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찢기고 있습니다. 각급 교단의 총회가 그런 대결을 해소하는 화해의 자리가 아니라 더 큰 분열의 자리가 되고 있으니 딱할 따름입니다. 감리교회도 10월 중순에 감독을 뽑는 선거를 하게 됩니다. 감리교회는 그간 감독회장 직무를 두고 오랫동안 다퉈왔습니다. 혼란이 감리교회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감리교회가 새로워져야 할 때입니다.

이제 추석이 다가옵니다. 감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맞이하는 명절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입니다. 가급적이면 많은 이들이 접촉하는 자리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 정일근 시인의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기억하시는지요? 명절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두레 밥상 앞에 앉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한 끼 밥 차지하기 위해 혹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 위해 날카로운 발톱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은 모두가 귀히 여기는 사랑을 회복하라는 일종의 부름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회복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 식탁은 성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올 추석에는 이런 밥상 앞에 둘러앉지는 못한다 해도, 서로를 귀히 여기는 마음만은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 우리 생명의 본질을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은 ‘서로 기대어 있음’입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 때 곁에 있는 이들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이맘때면 저는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墨畫’를 떠올리곤 합니다. 묵화는 물론 먹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화려하진 않기에 오히려 우리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그림입니다.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정경이 눈에 잡힐 듯 선합니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소가 물을 마십니다. 쟁기질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소도 힘겨웠을 것입니다. 할머니는 마치 자식을 돌보듯 소의 목덜미에 손을 얹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소도 고스란히 느꼈겠지요? ‘고맙다’, ‘애썼다’, ‘너라도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니?’ 부은 발잔등이 안쓰럽습니다. 적막하지만 애상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시는 ‘마침표’로 끝나지 않고 ‘쉼표’로 끝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족끼리도 이런 마음을 품고 서로를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뿐인가요? 우리가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이들 하나하나를 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더러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하는 범위 안에서 공원 산책이라도 하십시오. 텔레비전만 보시지 말고 문득 창문을 열어 밤하늘도 바라보십시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이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별 하나하나를 헤아리며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렸던 윤동주의 마음도 한번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중에 수술을 받은 교우가 계십니다. 잘 회복 중이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세 드신 교우들도 건강에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시니 고맙습니다. 점점 원만한 빛으로 무르익어가는 벼들이 우리 마음의 날카로운 것들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도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면 좋겠습니다. 은총 안에서 걷는 길에 생명의 향기, 평화의 훈풍이 불어오기를 기대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2020년 9월 26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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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따뜻하게

한희철의 얘기마을(99)


아픈 만큼 따뜻하게


끝내 집사님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애써 웃음으로 견디던 감정의 둑이 한 순간 터져 엉엉 울었다. 


고만고만한 보따리 몇 개 좁다란 마루에 쌓아놓고 무릎 맞대고 둘러앉아 드린 이사 예배.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고 집사님 손 아무 말 없이 잡았을 때, 집사님은 잡은 손을 움켜쥐곤 바닥에 쓰러져 둑 무너진 듯 울었다. 그렇게 울고 떠나면 안 좋다고, 옆의 교우들 한참을 달랬지만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쓰리고 아린 세월. 잠시라도 약해지면 무너지고 만다는 걸 잘 알기에 덤덤히, 때로는 우악스럽게 지켜온 지난날의 설움과 아픔이 막상 떠나는 시간이 되어선 와락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 데리고 하루하루 고된 품을 팔아 끊어질 듯 이어 온 위태했던 삶, 질곡의 땅 질곡의 시간, 단강을 떠나는 것이다. 아무도 그 눈물 쉬 말릴 수 없었다. 신집사님은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단강을 떠났다.




다음날 주일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 마음이 참으로 착잡했다. 가뜩이나 적은 교인인데 연초 안집사님에 이어 신집사님도 이사를 떠난 것이다. 유집사님은 기도를 하며 남은 빈자리를 잘 지키게 해달라고, 한 명이 떠났지만 열 명으로 채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잘 견디자고, 이게 농촌교회가 져야 할 십자가라면 그냥 지자고, 어쩜 우린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그렇더라도 낙망해선 안 된다고, 집사님의 이사 소식을 알리며 그런 얘길 덧붙였다. 내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예배를 드리며 자꾸 눈은 집사님 늘 앉던 그 자리에 함정 빠지듯 고꾸라지곤 했다. 봄철 따뜻한 볕에 흙벽 후둑후둑 녹아내리듯 마음 한 구석이 그렇게 무너지며 어렵게 한 주일은 갔다. 우린 점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다.


새로 맞은 주일, 사순절 절기의 첫 주였던 그 날의 설교 제목은 ‘많은 중에 우린 조금만 남았지만’이었다. 많은 중에 우린 조금만 남았지만 갈 길과 할 일을 가르쳐 달라 했던 이스라엘의 다급함과 그 다급함 속에 숨겨져 있는 거짓됨을 아울러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생각지 못했던 두 분이 새로 교회에 나왔다. 끝정자에 살고 있는 김기봉, 최동해 부부. 두 분 역시 어려운 이웃이지만 그건 분명 하나님의 배려였다. 인도한 안갑순 속장님을 따라 나란히 옆에 앉으신 두 분.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그 자리는 떠난 신집사님이 늘 앉던 그 자리 아닌가.

박수로 환영하는 우리들 마음이 기뻤고, 한편으론 아팠고, 그런 만큼 우리는 더욱 힘차고 따뜻하게 두 사람을 맞았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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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마라톤

한희철의 얘기마을(98)


이상한 마라톤


단강으로 목회를 떠나올 때 몇몇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첫 목회지이기도 하고 첫 목회지가 농촌이기도 한지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중 아직도 기억하는 말이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입니다. 농촌목회를 하고 있던 한 선배의 이야기입니다.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농촌목회를 마라톤에 빗대었습니다.


단거리는 잠깐만 뛰면 되니까 있는 힘을 다한다, 그렇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한참을 뛰어야 한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이 체력안배다, 무엇인가를 단 번에 해내려고 덤비다간 자칫 제풀에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런 뜻이었습니다.



햇수로 4년, 그동안 농촌에서 목회를 한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농촌 목회는 마라톤이다’라는 말은 꽤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지루해 포기하고 싶고, 자칫 덤비다가 지치기 쉬운 생활. 별다른 일 없이 견디자니 게을러지기 쉽고, 그런 자신이 괴롭고, 그렇다고 땀 흘려 일하자니 조건이 열악하고, 참으로 힘을 안배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농촌목회란 마라톤은 마라톤이되 이상한 마라톤입니다. 어디가 결승점인지, 지금 내가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길의 사정이 어떤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달리는 길 가에 서서 박수로 격려하는 이들도, 땀 닦으라며 물수건 건네는 이들도 없어 때로는 길을 잘 못 들어선 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먼 거리를 뛰는 체력의 한계도 한계지만, 길조차 잘못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맘 속 어이없는 갈등도 쉽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엔 이상한 마라톤을 뛰는 이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등수와는 상관없이, 어디 보이지도 않는 결승점을 향해, 그저 묵묵히 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끔씩이라도 그분들께 박수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그 길이 코스에서 벗어난 길이 아니라는 단지 그 하나만을 일러주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마라토너에겐 그것 하나면 족할지도 모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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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서리

한희철의 얘기마을(97)


밤 서리


동네 형, 친구와 같이 장안말 산에 오른 건 밤을 따기 위해서였다. 가을 산에는 먹을 게 많았고 그건 단순히 먹을 걸 지나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신나게 밤을 털고 있는데 갑자기 “이놈들!” 하는 호령 소리가 들려왔다. 산 주인이었다. 놀란 우리들은 정신없이 도망을 쳤다. 하필 주인 있는 밤나무를 털었던 것이다. 한참을 산 아래로 내려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잡히지 않은 것과 제법 자루를 채운 밤이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을 치느라 친구가 신발 한 짝을 어디엔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검정고무신이었지만 신을 잃고 가면 집에서 혼날 거라며 친구는 울먹울먹했다.


그때 동네 형이 제안을 했다. 내가 가서 신발을 찾아오겠다, 대신 오늘 딴 밤은 모두 내 차지다. 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산 주인이 무서워 신을 찾으러 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결국 형은 친구의 신발을 찾아와 밤을 모두 차지했고, 우리에게는 까먹으라고 몇 알씩 나누어 주었을 뿐이었다.


말은 못했지만 신발을 잃어버린 건 친구였는데 친구와 같이 밤을 모두 내놓은 것이 못내 억울했다.  


같이 책임을 진다는 것은 불이익을 나누는 것이다. 지금도 두 사람의 이름이 또렷한 어릴 적 한 기억은 지금도 그렇게 가르친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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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청도 운문사

신동숙의 글밭(242)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청도 운문사


가을 하늘이 좋은 토요일 정오인데, 가족들이 저마다 다 일이 있다고들 합니다. 은근히 기대하던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모처럼 혼자서 길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훌쩍 혼자서 집을 나서기 전에 "같이 갈래요?"하고 자녀들과 친정 엄마에게까지도 전화를 걸어서 일일이 다 물어보았기에,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홀가분하기만 합니다. 가뜩이나 온라인 등교로 두 자녀와 매일 집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그립기까지 했던 차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멀리까지 가지는 못하고 차로 달려서 한 시간 이내에 있으면서 조용히 책도 읽고, 숲길 산책도 하고,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면 좋은 것입니다. 


분도 명상의 집, 통도사, 석남사, 청도 운문사, 산길이나 숲속으로 산책도 할 수 있는 자연으로 마음이 더 갑니다. 국도를 달리면서도 목적지를 정하질 못하고서 마음이 저울질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모아지는 곳이 있습니다. 청도 운문사의 산세가 다시 보고 싶어진 것입니다. 운문사 뒷편으로 먼 산능선이 보이는 곳이라면 주차장 한 귀퉁이에 차를 세워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길이 초행길일 때처럼 무섭지가 않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만 다시 이 길을 되돌아 내려오면 되는 걸음입니다.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청도 호거산 운문사는 160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면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 수도 도량입니다. 사찰에서 하는 일을 울력이라고 하는데, 앉아서 하는 참선 만큼이나 몸을 움직이는 울력 또한 중요한 공부의 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보았던 '기도하고 일하라.'의 근본 수행과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코로나19의 안전 수칙은 청정 도량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사찰 입구에는 손소독제가 놓여 있고, 방명록 대신 출입자의 성함과 연락처를 적는 기록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사 재건축을 하고 있는지 기계음이 귀를 찌릅니다. 쉼이 없는 기계음은 들을 수록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귀를 찌르는 귀뚜라미 소리와는 비슷한 듯 사뭇 다른 소리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갈 수록 이따끔 산이나 바다를 찾아서 몸도 마음도 기대어 자연과 호흡하는 시간을 더욱 가지려고 합니다. 자연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흐트러졌던 많은 것들이 본래면목으로 저절로 회복됨을 느낍니다.


운문사에는 자그마한 전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압전과 관음전을 지나서 오백전에서 발걸음이 머뭅니다. 한 비구니 스님이 목탁을 치면서 독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어린 스님이 손에 책자를 들고서 오백전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탑돌이를 하듯이 돌고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손에 든 내용을 암송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 짐작하게 된 데에는 저 역시 가끔은 잠을 쫓거나 문장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서 거실을 탑돌이 하듯이 돌고 돌기도 하는 제 모습이 스님의 모습에 비추어 보이는 것입니다. 


오백전 우측으로 긴 나무 의자가 보이고, 수행자들이 거하는 곳이라는 나무 표지판이 막다른 길임을 보여줍니다. 무성한 나뭇가지 잎들이 햇살을 가려주고, 저 발 아래로 개울물이 명경지수입니다. 잠시 앉아서 진도가 안나가던 책 읽기를 마무리하기에 맞춤인 장소입니다. 


저녁해가 서산으로 기울려고 하지만, 이대로 산을 내려가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좌측 이정표를 따라서 사리암까지 올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는 가파른 길을 30여 분을 걸어서 올라가야 사리암이 나온다고 합니다. 걸어가는 입구엔 나무를 깎아서 만든 지팡이가 여러 다발 꽂혀 있는 걸로 보아 오늘은 무리일 것 같아서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해가 남아 있습니다. 6시면 저녁 예불을 드리는 시간이라는 걸 미리 보아두었습니다. 다시 들어선 경내는 산속 사찰의 본래면목으로 조용해졌습니다. 한 여인이 다가오더니, "죄송하지만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대가족입니다. 아기띠로 갓난 아기를 안은 젊은 아빠도 보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 여인 두 명, 가족 단체 사진을 제게 부탁한 것입니다. 배경이 되는 것은 수령이 500년이 넘는 '처진 소나무'입니다. 그리고 우측 뒤로는 기암절벽이 멋진 산능선이 보입니다. 전문가는 아니더래도 전문가의 솜씨 만큼이나 가족 사진을 잘 찍어주고 싶은 그런 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되도록 많이 찍어야 합니다.  배경이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도록 조금씩 각도를 달리해서 서너 장, 그리고 인물이 가까이 보이도록 여러 장을 찍었습니다. 서 있는 분들이 눈을 감았다 뜰 새를 알 수 있도록, "하나, 둘~", 그렇다고 사진 부탁을 받긴 했으나, 제 욕심껏 초면인 분들을 너무 오래 세워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초집중을 하면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고맙습니다"는 인사를 받으며 핸드폰을 돌려주고 돌아서 가려는데, 젊은 할머니께서 몇 걸음 따라오시며 합장을 하시면서, "너무 고맙습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하면서 거듭 몸을 숙이십니다. 저도 두 손을 모아서 공손히 인사를 드리면서 걸음을 돌렸습니다. 등 뒤로는 "와~" 하는 탄성이 저녁 바람결에 환청인 듯 들려오는 것 같아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손소독제가 놓여 있던 사찰 출입문 위 범종루에서 법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서산으로 하얀 상현달이 어둑해지는 저녁 하늘에 호젓해 보입니다. 경내 여기저기 머물던 발걸음들이 법고 소리 아래로 모여듭니다. 이곳이 극락정토가 아니고 따로 있을까 싶습니다. 예불을 드리려 걸음을 옮기는 스님들의 모습이 그림 같습니다. 


색색깔 옷은 달리 입었지만 멈추어 서서 법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말갛게 하얀 달을 닮았습니다. 법고 소리에 모두가 멈춘 절 마당에는 승과 속이 따로 없으며, 법고를 치는 이와  듣는 이가 더이상 둘이 아닙니다. 조금 전 한 순간에 찍던 사진 한 장에도 정성을 담으려던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알아본 분의 마음이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 또한 순간을 영원으로 산 것과 다르지 않아서, 차오르는 상현달 만큼이나 입가엔 미소가 절로 머금어지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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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96)


어느 날의 기도



외로운 영혼을 이젠

믿습니다.

숨 막히는 이유

빈틈없는 소유

뿌리 없는 비상보다는

아무것도 아니어서 텅 빈

외로운 영혼들

외로워도 외롭지 않은

외로워서 외롭지 않은

아무것도 없어

꾸밈없는 영혼을

축복하소서,

주님. 


-<얘기마을>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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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신동숙의 글밭(241)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초가집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케치북에 그리고 그리던 제 마음의 고향집입니다. 어린날의 그림 속에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오른편엔 초가 지붕을 훌쩍 넘는 나무 한 그루, 왼편엔 장독대가 있고, 둘레에 싸리와 나무로 엮은 울타리는 키가 낮으며 성글고, 집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집 앞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그런 마음속 풍경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져오면서 평화로웠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의 성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서 비록 혼자서 걸어온 길이지만, 그 길에 만나게 된 벗님들에게서도 나와 같은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가는 일은 별을 발견한 듯 경이로운 일입니다. 중학생 시절 건물 귀퉁이 작은 동네 서점에 처음으로 들어가 머물며, 서점 안에 책들을 모두 살피어 비로소 마음에 들어와 손에 잡은 한 권의 책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이었습니다. 처음 본 어느 스님의 단정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오던 순간입니다. 


스무살 초반엔 초가집과 함께 막사발이 참 좋아졌습니다. 깊은 묵상 중에 인간의 문명을 하나씩 거두어내고 있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만든 건물과 유물들, 자동차, 우주선, 샴푸, 칫솔까지 정말로 필요한 것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모든 유·무형의 문화와 문명을 하나씩 마음의 체에 거르고 걸렀던 때입니다. 주위에선 취업에 신경 쓸 시절에 저 혼자서는 속으로 깊이 앓던 때입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몰라주는, 길 없는 길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 길을 혼자서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청춘의 가슴에는 한 점 별빛처럼 미세하지만 빛나며 손짓하는 영혼의 부름이 있고, 물처럼 구름처럼 가슴 가장 밑바닥으로 유유히 흐르며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대상을 만나면 일어나는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방황이 되기도 하는. 


배흘림 기둥으로 올린 한옥의 멋스러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기와집을 볼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지배와 피지배가 낳은 건축 양식이 어쩌면 고래등 같은 한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닿고부터는 아름다운 한옥도 제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가을 하늘의 쪽빛을 담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선 어딘가 애써 잘 보이기 위한 인위적인 한 마음이 거슬렸습니다. 그에 비해 막사발은 자연적이고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본성을 닮았습니다. 


눈먼 장님이 한 걸음씩 길을 더듬어 한발짝 내딛듯 제 마음이 걸어가는 길은 가족도 평범한 주위 사람들의 관심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미 물길이 난 그 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마음의 길이 아니고선 이 땅을 살아가는 몸이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십 대 초반 가슴으로 읽은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의 시인의 마음이, 저에겐 몸을 받아서 살아 숨 쉬는 일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먹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방식의 모순. 




* 시와 구름이 머무는 황간역의 강병규 역장님의 돌그림


2002년 월드컵의 열기도 제 가슴에 불을 지피지는 못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과 소로의 월든 숲에 오두막이 가슴으로 들어오고, 2003년 어느 봄날엔 저 역시 그러한 삶을 살기로 뜻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키를 조정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가 혼자만 잘 살아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입니다. 돕는 삶, 나누는 삶이라야 비로소 인간으로써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한 생각이, 아궁이 마른 장작에 불을 지피듯 풀무질을 하는 바람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는 헐어버리기 쉬운 성근 싸리와 나무 울타리도 아니고, 단숨에 뿌리 뽑힐 나무도 아니었습니다. 딸아이의 행보에 엄마는 당뇨가 왔고, 아버지는 한 쪽 귀가 안들리고, 약혼자는 자신의 삶까지 접고서 인도에 가면 저를 만날 수 있단 희망 하나로 비행기표를 끊어둔 상황과 막다른 골목에서 맞닥뜨린 것입니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품에서 내려와 집 앞 골목길을 자박자박 걸어다닐 무렵 다도(茶道)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도가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익히 들어온 밥상머리 예절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신혼 살림을 고르던 시절 그 예쁜 커튼들을 다 제쳐두고 장식도 없고 고운 색으로 물도 들이지 않은 광목천으로 된 단순하고 소박한 커튼을 고른 저를 두고 같이 따라간 친구와 가족들의 반응은, "발품 팔고서 기껏 고른 게 저거냐"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제 마음은 무명의 광목천에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집 창문에 걸어둔 그 천덕꾸러기 광목천 커튼이 다실에 걸려 있는 걸 보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막사발을 훔쳐간 일본이 고려청자가 아닌 막사발을 그들의 국보로 모셔 놓았으며, 초가집을 닮은 초의선사의 일지암이 한국 다도의 성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동안 혼자서 걸어온 길이 영 틀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확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잡초요리연구가인 고진하 시인 목사님과 아내 권포근 선생님의 자연 속에서 공생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생명과 이웃을 헤치지 않으려 선택하신 불편당의 삶, 한국 다도의 성지가 된 초의선사의 일지암, 초가집을 닮은 소로와 법정 스님의 오두막, 권정생 선생님의 안동 조탑리의 가난한 생가, 한희철 목사님이 단강 마을 이웃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서로를 배려하며, 느린 호흡으로 주위에 흔한 나무와 흙으로 담을 쌓아 만든 인우재의 기도실이 제겐 마음의 성지입니다. 


그런 제 마음속 그림이 글에서도 간간히 드러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숨인가봅니다. 제 글에서 오두막이 나오는 글을 보시고,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을 손수 돌에 그림으로 그려서 선물로 보내주신 분은, 기차가 지나치던 작은 간이역을 시(詩)와 구름이 머무는 역으로 가꾸신 강병규 황간역장님입니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마을 사람 누구든 그리고 동행하는 우리는 시동(詩同)은 역장님으로 부릅니다. 


커피 물을 들인 고목의 나무틀 속에 놓인 돌그림의 빛깔이 더불어 따스하게 번집니다. 마치 돌그림이 거하는 안식처, 오두막 같습니다. 그림이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제 마음의 성지와 점점 하나로 물이 듭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제 마음의 성지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평화가 흐르고 숨을 쉬고 있는 이 몸에 깃드는 지금 이 순간이 제 영혼의 집이 되는 따스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집니다. 벗님들은 어떤 마음의 성지를 가졌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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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한희철의 얘기마을(95)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


어릴 적 교회학교는 따뜻한 교실이었다.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가도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놀던 것을 그만 두고 교회로 향했다. 믿음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린 때다. 이제쯤 생각하기로는 성경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회에 가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책도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흔치 않던 시절, 우리들 가슴엔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여름이었다. 마침 그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요란하게 내렸다. 빗소리에 가려졌는지, 선생님이 안 계신 건지 예배시간이 되었는데도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교회로 갔다. 검정 고무신에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쫄딱 맞은 채였다.


뚝뚝 빗물을 떨구며 기와지붕 허름한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예배당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텅 빈 것이 아니었다. 어둑한 제단 저쪽 누군가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보니 선생님이었다. 그날 예배는 선생님과 둘이서 드렸다.


그날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 선생님 이름이 무엇인지 난 지금 기억이 없다.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어두컴컴한 제단 앞  무릎을 꿇으셨던 선생님은 지금도 날 가르치고 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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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한희철의 얘기마을(94)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지금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이야기합니다. 안갑순 속장님이 담배를 대한 건 놀랍게도 일곱 살 때부터였습니다. 충(회충)을 잡기 위해 담배를 풀어 끓인 물을 마신 것이 담배를 배운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 옛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속장님은 시집을 갈 때에도 담배를 챙겨갔다 합니다. 끝내 고집을 부려 풀지 않는 보따리 하나를 두고선 모두들 땅문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담배꾸러미였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우연히 눈치 챈 시아버지는 노발대발하는 대신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담배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시아버지가 어디 밖에 나갔다 오신 날 서랍을 열면, 말없이 약속된 서랍을 열면, 거기엔 언제나 담배 몇 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시로선 가장 좋은 담배가. 



그렇게 담배와 벗한 것이 어느새 6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환한 불빛이 자신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연이틀 꾼 것이 속장님에겐 교회를 찾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곰곰이 그 범상치 않은 꿈을 생각하다가 스스로 교회를 찾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이해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몇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면서도 담배는 못 끊었습니다. 60년 동안이나 인이 박힌 담배를 끊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세례를 받던 날, 그날부터 속장님은 거짓말처럼 담배를 뚝 끊었습니다. 놀란 건 며칠이나 가나 보자 했던 주위 사람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좋던 담배가 냄새조차 역겹더랍니다. 속장님이 놀랐습니다.


속장님은, 눈물 많은 속장님은 지난 이야기를 하며 또 주르르 눈물을 흘립니다. 담배를 끊고 나서야 담배 냄새가 그렇게 역겹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걸 알고 나니까 돌아가신 어머니가 겪으신 고초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어머니 계신 방에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어머니 생각은 조금도 못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결국 담배를 모르시던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못하신 채 담배 냄새의 역겨움을 그냥 참고만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후회스러움.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방법 중엔 그런 게 있나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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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朗讀)

신동숙의 글밭(240)


낭독(朗讀)




곁에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밀려올 때


묵상 중에도 흔들려서 

말 한 마디 건져올릴 수 없을 때


책을 펼쳐보아도

글이 자꾸만 달아날 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줍니다

내가 나에게 읽어줍니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독이고 다독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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