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우리집 복순이가 무서운 쿠팡맨 우리집 대문에는 열쇠가 없다. 대신 못 쓰는 비닐 포장지를 꼬깃꼬깃 접어서 문틈에 끼워두면, 아무렴 태풍이라 해도 대문을 덜렁 열지 못한다. 바로 옆집과 앞집에는 cctv까지 설치해 두고서 대문을 꽁꽁 걸어 잠궈두고 있지만, 우리집 마당에는 낯선 낌새만 채도 복순이와 탄이가 골목이 떠나가라 시끄럽게도 집을 지킨다. 이 점이 이웃들에겐 내내 미안한 마음이지만, 다들 별 말씀은 안 하신다. 대문을 열쇠로 잠그지 않는 이유는 배송 기사님들이 다녀가시기 때문이다. 부재시 따로 맡길 장소가 없다 보니, 예전엔 담을 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대문을 열쇠로 잠그지 않고, 그 옛날집들처럼 엉성한 잠금 장치를 둔 것이 비에 젖어도 괜찮은 비닐 포장지인 셈이다. 기사님들은 그냥 대문을 살째기 밀고서 들어.. 2021. 5. 12. 로즈마리와 길상사 한겨울을 지나오며 언뜻언뜻 감돌던 봄기운이 이제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요즘입니다. 길을 걸으며 발아래 땅을 살펴보노라면 아직은 시들고 마른 풀들이 많지만 그 사이에서도 유독 푸릇한 잎 중에 하나가 로즈마리입니다. 언뜻 보아 잎 모양새가 소나무를 닮은 로즈마리는 개구쟁이 까치집 머리칼을 쓰다듬듯이 손으로 스치듯 살살살 흔들어서 그 향을 맡으면 솔향에 레몬향이 섞인듯 환하게 피어나는 상큼한 향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로즈마리를 생각하면 스무살 중반에 신사동 가로수길과 돈암동 두 곳의 요가 학원에서 작은 강사로 수련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던 고시원 방이 삭막해서 퇴근길에 숙소로 데리고 온 벗이 바로 작은 로즈마리 묘목입니다. 언제나 로즈마리와의 인사법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 2021. 2. 24. 루이보스 차와 아버지 아버지는 루이보스 차가 좋다고 하셨다. 딸이 드리는 이런 차 저런 차를 다양하게 맛보시더니 그중에 루이보스 차를 드시면 속이 가장 편안하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식사는 되새김질로 마무리를 하셨다. 풀밭에 앉은 황소가 우물우물 풀을 씹어 먹듯이 소눈을 닮은 아버지의 큰 눈망울은 끔벅끔벅 먼 고향 하늘가 어드메 쯤인가를 그리시는 듯 보였다. 그러면 함께 밥을 먹던 엄마의 입에서 툭 튀어나오던 한소리가 "추잡구로" 아버지의 되새김질에 뒤따르는 엄마의 추임새였다. 그러면 아버지는 소처럼 점잖구로 어릴 적에 소여물을 먹이시던 묵은 얘기를 또다시 처음처럼 풀어놓으셨다. 그러면 어린 내 눈앞으로 누런 황소가 보이고, 우물우물 움직이는 소의 되새김질이 보이고, 순한 소의 눈망울 속으로 푸른 풀밭을 닮은 푸른 하늘이 넓게.. 2021. 2. 23. 달콤한 교회, 교회당을 나오면서 신동숙의 글밭(317) 달콤한 교회, 교회당을 나오면서- 교회가 맹신앙과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지가 되지 않기를 - 코로나 바이러스와 탐진치 삼독의 전파지가 된 일부 교회와 선교기관들로 인해서, 교회가 더욱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요즘이지만, 한 시절 교회에 몸 담았던 나에게 있어 교회 생활은 참 달콤했다. 그런 달콤한 교회당을 떠나온 일을 비유하자면, 카필라 왕국을 떠나오던 석가모니의 일에 비할 수 있을까. 5년 동안 뿌리를 내린 교회에서, 마지막 갈등의 순간에, 지나온 과거를 깊이 되돌아보았고, 다가올 미래를 거듭 내다보며 뼛속까지 자녀들의 영혼까지 짐작해보았다. 이대로 교회 생활을 계속해 나간다면 두 자녀들은 겉으로는 순조롭게 자랄 것이고, 우리 가정은 평안할 것이었다. 하지만 맹신앙으로 영.. 2021. 1. 29. 정인이가 당한 고통은 신동숙의 글밭(306) 십자가형의 백배가 넘는 고통- 정인이가 당한 고통은 사진/김동진 백을 잘해줘도 영아를 키우는 엄마는 잘못한 하나가 마음에 걸려 밤새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영아가 놀이매트 위에 앉아서 놀다가 뒤로 쿵넘어지기만해도 엄마는 간이 떨어져서 말 못하는 어린 것을 한순간도 내려놓지 못하고만일에 하나가 두려워 병원으로 달려가는 사람이다 5개월 동안 온몸에 뼈가 부러졌다가 붙기를 반복했다입 속까지 찢어진 살갗에 뜨거운 이유식이 파고들고 아이는 췌장이 찢어지고 뱃속이 터져도 울지 못한다의사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라 진단했다 정인이의 고통을 읽는 일이 이렇게 고통스럽다벽에 붙은 십자가 앞에서 일어난 고문과 살인 행위다 십자가형의 백배가 넘는 고통을 잘나가는 목사와 어린이집 원장의 아들.. 2021. 1. 7. 프레임 안에선 범죄도 아카데미상을 받는다 신동숙의 글밭(305) 프레임 안에선 범죄도 아카데미상을 받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보다 약한 생명에게 - 타락한 세상과 분리된 거룩한 예배당은 노아의 방주처럼 안전한 믿는자들만의 구원의 세상, 그 거룩한 모태 기독교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예수의 두레 밥상처럼 둘러앉아 하나가 되어야 할 예배의 자리에서조차 서로가 가슴으로 하나 되지 못하고, 말씀을 전하는 입과 귀로 나뉘어 분리된 예배의 형식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구원과 내세 천국을 설파하면서 침을 튀겨도 그리스도인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며 대면 예배를 고집하며 헌금은 대면으로를 주장하는 그릇된 목사와 그의 거룩한 자녀라는 프레임 안에서. 유년기부터 장성하기까지 거쳐온 엘리트 코스, 기독교계의 서울대학교라고 부르는 포항의 HD대 미션 스쿨이라는 프.. 2021. 1. 6. 2021년의 첫날, 오늘도 무사히 신동숙의 글밭(301) 2021년의 첫날, 오늘도 무사히 기대와 설레임으로 서서히 다가오던 새해의 첫날로 추억한다. 오늘 맞이하는 2021년 신축년(辛丑年)의 새해 첫날에선 고요함 속에 생명들의 묵직한 아픔의 소리가 들어있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서 겨울에는 멈추어야 할 생명들이 문명의 흐름을 따라서 더는 멈추지 못하고서 여기저기 생가지 꺾이듯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 그치질 않는다. 빙판길로 변해버린 제주의 도로에선 미끄러진 차량들과 사람들. 거제시에선 새벽 출근길에 가장들이 탄 오토바이가 달리던 도로 위 블랙아이스에서 줄줄이 미끄러져 내동댕이 쳐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늘어나는 배달 음식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위험천만한 도로를 달렸을 오토바이 배달업 종사자들 그들의 더운 한숨으로도 이 추운 겨울날이 따뜻해지지.. 2021. 1. 1. 안전한 장소가 뒤바뀐 시대 신동숙의 글밭(299) 안전한 장소가 뒤바뀐 시대 인간의 역사는 안전한 장소를 찾으려는 탐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재지변과 야생 동물의 습격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마침 동굴이 되었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한숨 돌린 인간은 비로소 동굴벽에 그림을 그릴 여유가 생겼으리라 짐작이 간다. 차츰 주위에 흔한 돌과 나무와 흙을 모아서 움집을 세우고, 한 곳에 터를 잡고 모여 살게 되면서 부락이 형성되고, 세월이 흐를 수록 집의 형태는 더욱 정교해지고, 나아가 집은 하나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고, 안전한 집터 주변으로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면서 잉여물이 생기고, 잉여물은 그보다 더 커다란 권력과 국가를 낳고, 급기야 집은 인생의 목표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날의 집은 주거지의 목적에 덧붙.. 2020. 12. 29. 오토바이에 썰매를 매달아요 신동숙의 글밭(297) 오토바이에 썰매를 매달아요 배달물을 싣고서 바쁘게도로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면아찔하니 가슴으로 찬바람이 불어요 일하러 나가는 엄마가온라인 등교로 집에 있을 자녀에게짜장면을 시켜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요 오토바이를 탄 사람도이웃집 귀한 아들이고 아빠일 텐데그런 생각이 들지요 도로를 달리는 차들 사이로 비틀비틀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는 마음은언제나 아슬아슬하지요 만약에 오토바이 뒤에 양쪽으로 바퀴가 달린 썰매를 매달면 음식 배달, 우편물 배달, 택배 배달물을 뒤에 싣고비와 눈을 가려줄 천정 덮개를 길게 앞으로 늘이고 그러면 오토바이 속도가 느려진다며주문한 짜장면이 늦게 도착한다며우편물이 늦게 온다며불평할 이웃이 있을까요? 우리가 조금만 느긋한 마음을 낸다면우리의 아빠와 아들이 탄 .. 2020. 12. 27. 이전 1 2 3 4 5 6 ···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