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오페라의 유령>과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 신동숙의 글밭(33) 과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 나를 위해 언제나 기도하시는 백집사님, 그분의 정성과 성실함 앞에 더이상 거절을 할 수 없어서 동행한 25주년 공연 실황 녹화. 스크린으로 보는 . 화려하고 웅장한 노래와 춤, 의상, 배우들의 아름다움 앞에 내 마음 왜 이리 기쁘지 아니한가. 무대 위 200벌이 넘는 화려한 의상과 목소리와 배우들의 표정. 뼈를 꺾은 발레 무희들의 인형 같은 몸짓과 노랫소리. 지하실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 노래 노래 오페라의 유령.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저 화려함 현란함 요란한 박수 갈채 속에서 나는 그 뿌리를 보는 것이다. 건물 안과 건물 밖을 나누고 무대 위와 무대 아래를 나누고 주인공과 엑스트라를 나누고 공연자와 관람자를 나누고 로얄석와 일반석을 나누고 고용인과 .. 2019. 12. 16. 좋은 건 가슴에 품는다 신동숙의 글밭(32) 좋은 건 가슴에 품는다 좋은 건 가슴에 품는다. 거꾸로 말하면, 가슴에 품을 수 있는 건 좋은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라 칭하지 않고 가슴이라고 한 것은 실제로 심장을 중심으로 가슴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이 넉넉하거나 이타적인 사람은 못된다. 내 마음에 들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밥 한 숟가락 입에 넣지 않는 꽉 막힌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내겐 어려서부터 다른 무엇보다 늘 마음이 문제였다. 놀이터에서 땅거미가 질 때까지 흙투성이 땅강아지가 되도록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며 온종일 배를 골아도 나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 얘기로는 젖배를 골아서 그렇다는데. 태어날 때부터 몸에 배부른 기억이 없다면 상대적인 배고픔에도 무딘 것인지. 애초.. 2019. 12. 15.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신동숙의 글밭(30) 물수제비를 뜨는 아이들 볼에 닿는 햇살이 따사로운 겨울날 오후다. 양짓녘엔 봄인 듯 초록풀들이 싱그럽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 금빛 마른풀에선 맑은 소리가 들릴 듯 말듯 울린다. 지난 며칠간 매서웠던 추위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저절로 녹아서 걸음마다 한겹한겹 마음이 열리는 평온한 날씨다. 날씨가 포근해서일까. 학원 중간에 시간이 남았을까. 모처럼 개천에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떠드는 것처럼 또랑또랑 들려온다. 뭘 하는가 싶어서 다리께에서 가만히 내려다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갈 뿐 오히려 다리 중간에 멈춰 선 내 모습이 어색한 그림이긴 하다. 하지만 내게는 자연 속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정겨운 그림이다. 이 아름답고 재미난 광경을.. 2019. 12. 12. 묵묵히 깊이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 신동숙의 글밭(29) 묵묵히 깊이 뿌리를 내리는 대나무 링링, 타파, 미탁. 지난 가을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의 이름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바람이 크게 불고, 강수량이 많았던 가을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강변 마을 인근에도 침수를 우려한 차량 대피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로 세 번의 태풍은 태화강의 많은 생명들을 거세게 지우며 지나갔습니다. 물이 빠져나간 태화강변. 그동안의 수고로운 손길을 뿌리 치듯 남은 것이라곤, 뿌리까지 뽑혀 쓰러진 나무들, 진흙탕이 된 강변둑, 심지어는 껍질이 벗겨지듯 바닥이 뜯겨져 나간 산책로의 허망한 모습들 뿐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속수무책. 올해 가을 비로소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태화강. 행사 지구가 가을 국화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반면, 상류 지역은 중장비.. 2019. 12. 11. 아침 서리를 녹여줄 햇살 한줄기 신동숙의 글밭(28) 아침 서리를 녹여줄 햇살 한줄기 겨울이 되고 아침마다 서리가 하얗게 차를 뒤덮고 있는 풍경을 본다. 딸아이의 등교 시간을 맞추려면 바로 시동을 걸고서 출발을 해야 하는 시각. 시동을 걸면 2~3초 후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그 시간의 공백 만큼 자동차는 밤새 속까지 싸늘하게 차가웠다는 신호겠다. 우선 와이퍼 속도를 최대치로 올리고 워셔액을 계속 뿌려 가면서 앞유리창에 낀 얼음을 우선 급한대로 녹이기로 한다. 뒷유리창과 옆유리창까지는 어떻게 해 볼 여유는 없다. 차를 출발 시킨 후 골목을 돌아 나오는 동안에도 좌우로 와이퍼의 힘찬 율동과 워셔액 분사는 계속된다. 아침 기온이 그런대로 영상에 가까운 날씨엔 뚝뚝 살얼음이 떨어져 나가듯 그대로 물이 되어 녹아서 흐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 2019. 12. 10. 서점 점원이 되는 꿈 신동숙의 글밭(27) 서점 점원이 되는 꿈 소망이 하나 생겼다. 서점 점원이 되는 꿈. 머리가 복잡한 주인이나 서점의 건물주가 아닌 그냥 점원이다. 새책이 들어오면 제자리에 꽂아 놓고, 서점 안을 두루 정리도 하고, 손님이 원하는 책이 있으면 찾아 드리고,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하는 손님이 계시면, 미안해 하지 않도록 말없이 곁에서 기다려 주는 그런 마음 따뜻한 점원.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설명해 드릴 수 있는 친절한 점원.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서 그 사람만을 위한 책을 추천해 줄 수도 있는 능력 있는 점원. 이쯤 되면 서점 점원은 거의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몸이 아닌 마음에 대한 처방이 될 수도 있기에.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은 종종 매스컴에서 들어온 .. 2019. 12. 9.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신동숙의 글밭(25)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예쁜 찻잔을 보면, 순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먼저 마음으로 가만히 비추어 봅니다. 찻잔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색의 원을 천천히 그려보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가짐으로 인해 지구 한 켠 누구 하나는 못 가질세라. 희귀하거나 특별한 재료보다는 주위에 흔한 흙이나 나무 등 자연물로 만든 찻잔인가. 나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오는 손님이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내놓을 수 있는 평등한 찻잔인가. 간혹 놀러온 어린 아이에게도 건넬 수 있는, 설령 깨어진대도 아까워하거나 괘념치 않을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만약에 깨어진대도,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후손에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자연물의 찻잔인.. 2019. 12. 7.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신동숙의 글밭(24)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식구들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자고 했을 때 결사 반대를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에게 강아지는 오롯이 꼼짝 못하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날 집에 오니 아들이 드디어 자기한테도 동생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눈까지 반짝인다. 성은 김 씨고 이름도 지었단다. 김복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 품 안에 쏙 안기는 강아지를 아들과 딸은 틈나는 대로 안아 주고, 밥도 챙기고, 똥도 치우고, 주말이면 강변길로 오솔길로 떠나는 산책이 즐거운 가족 소풍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서너 달이 못갔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지는 복순이. 일년이 채 안되어 복순이의 덩치는 아들만큼 커진 것이다. 똥도 엄청나다. 한 학년씩 .. 2019. 12. 6.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신동숙의 글밭(22)/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하루를 보낸 후 내 방으로 들어옵니다. 가만히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 정리되지 않은 일들, 사람과의 관계들이 때론 무심한 들풀처럼 그려집니다. 참지 못한 순간, 넉넉치 못한 마음, 후회스러운 마음은 하루의 그림자입니다. 무심한 들풀 사이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들꽃처럼 환하게 미소를 띄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순간들이 모여 색색깔 조각보의 모자이크처럼 하루를 채우고 있답니다. 낮 동안에도 잠시 잠깐 틈나는 대로 차 안이나 어디서든 홀로 적적한 시간을 갖지만, 밤이 드리우는 고요함에 비할 수는 없답니다. 우선 천장의 조명을 끕니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고, 글도 쓰려면 책상 위 작은 스텐드 조명은 켜둡니다. 종지만한 유리 찻잔 안.. 2019. 12. 4. 이전 1 ··· 17 18 19 20 21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