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191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신동숙의 글밭(45)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작은 찻잔에 담긴 차 한 잔이 있습니다. 내려오던 햇살은 율홍빛 속에 머물고, 차향은 30년 전 스치운 푸른 바람 냄새를 아련히 기억합니다. 천천히 서너 모금으로 나누어 마십니다. 그리움으로 출렁이던 잔은 빈 잔이 되고, 빈 잔은 하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 잔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은 한 점 하얀 별빛으로. 없는 듯 계시는 빛의 하나님이 잠시 내려앉아 고요히 머물러 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찻잔에 담긴 찻물을 비우는 순간 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허전한 나를 하늘로 채우길 원합니다. 나의 좁은 창문을 열면, 작고 여린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허감, 무력감, 가난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이제는 알든 모르든 내 안에 있는 나의 연약함과 부.. 2019. 12. 30.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신동숙의 글밭(43)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제 기억 속의 세월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입니다. 잊혀지지 않으며, 잊혀져선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땅 어디에선가 그와 같은 불합리한 일들이 모습을 달리하고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닷속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유족들의 가슴 속으로 따뜻한 햇살 한 줄기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분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눈길이 끊이지 않는 파도처럼 우리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일렁이기를 소망합니다.. 2019. 12. 28. 내 마음의 오두막 신동숙의 글밭(39) 내 마음의 오두막 늘 그리운 곳 호젓이 가고픈 곳 마음은 이미 가 있는 곳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꺼지지 않는 등불 권정생 선생님의 오두막 법정스님의 오두막 소로우의 오두막 둘레에 흔한 흙과 나무와 돌로 지은 외로운 숲의 다정한 말벗 먼 걸음한 빗물 보듬어 흠씬 젖었다가 눅눅한 가슴 햇살과 바람이 말려 주는 집 담장이 없어 키 작은 풀꽃 맘놓고 기댈 수 있는 구멍 난 창으로 별빛이 들어 고단한 몸 누일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다가 때가 오면 그대로 흙이 되어 뒷모습도 아름다운 내 마음의 성지(聖地) 그리고, 그대 마음의 오두막 - 신동숙 ▫ 2019년 9월 23일 詩作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권정생 선생님 詩. 백창우 曲) 2019. 12. 24. 고독과 침묵을 사랑한 사람들 신동숙의 글밭(38) 고독과 침묵을 사랑한 사람들 올 한 해 뜻깊은 일 중에 하나가 평소 존경하는 분들의 저서를 모으는 일이었다. 모아서 처음부터 다시 읽는 일이다. 곁에 두 고서 거듭 마음에 새기고 싶은 그런 애틋한 마음이었다. 이미 절판이 된 책들은 온·오프라인 중고서점에서 구했고, 보수동 책방 골목도 여러 차례 찾았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윤동주, 법정스님, 신영복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등 나에겐 별이 된 이름들이다. 그중 가장 많이 모은 저자가 법정스님이다. 지난여름에는 1976년에 발행된 부터 연대순으로 읽어가기로 했다. 다독가였고, 애서가였던 스님의 책 속에는 조주선사부터 한시, 당시, 선시 등 눈을 밝혀 주고 귀를 맑게 하는 이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중에 의외다 싶으.. 2019. 12. 23. 동지 팥죽 속에 뜬 별 하나 신동숙의 글밭(37) 동지 팥죽 속에 뜬 별 하나 얼마 남지 않은 2019년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한 해의 마지막엔 언제나 지나온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분위기가 스며있는 것 같다. 동지 팥죽 하면 문득 2000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가 새 천년이 시작된 직후였으니까. 당시에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보다는, 시대도 한 개인으로서도 걱정과 막연함으로 어수선하고 어둡던 시절이었다. 시절이 그랬고, 내 마음이 그랬다. 요즘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이 어떨지 더불어 헤아려 보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이라는 전공을 살리기엔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취업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였으니까. 인문학이란, 질문을 씨앗처럼 심는 학문임을 이제야 돌이켜 헤아리게 된다. 결실을 .. 2019. 12. 22. 아들 입에 달라붙은, 욕(辱) 신동숙의 글밭(35) 아들 입에 달라붙은, 욕(辱) 4학년이 된 아들에겐 갈수록 늘어나는 게 있답니다. 먹성과 욕(辱)이랍니다. 어디서 배운 건지, 어디서 들은 건지 아주 입에 찰싹 달라붙은 욕은 떨어질 줄을 모른답니다. "수박을 먹을 때는 씨발~라 먹어어" "시바 시바 시바새키" "스파시바" 욕은 아주 신나는 노래가 되어 흥까지 돋웁니다. 해학과 풍자의 멋을 아는 한국 사람 아니랄까봐요. 그럴수록 엄마의 마음도 같이 기뻐해야 되는데, 도리어 점점 무거워만집니다. 뭔가 바르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테지요. 엄마의 잔잔한 가슴에 마구 물수제비를 뜨는 아들의 욕. 참, "스파시바"는 욕이 아니라며 능청스레 당당하게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러시아 말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라면서요. 그러면서도 입에.. 2019. 12. 20.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신동숙의 글밭(34)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는 명성이 어울리는 고흐. 그가 남긴 그림과 편지글들은 내 영혼을 울린다.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로 내 가슴을 물들인다.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후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으나, 그 시대가 감당하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나 뜨거웠는지도 모른다. 고흐가 가슴에 품은 건 무엇인가?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지니게 했는지. 그의 그림과 글을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뿌리 깊이 고뇌하는 한 영혼과 만난다. 눈 오는 밤, 조금은 쓸쓸한 이 겨울에 어울리는 한때의.. 2019. 12. 19.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신동숙의 글밭(33)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잠결에 놀란 듯 벌떡 일어난 초저녁잠에서 깬 아들이 걸어옵니다. 트실트실한 배를 벅벅 긁으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눈도 못 뜨고 "아빠는?" / "아빠 방에" "누나는?" / "누나 방에" "엄마는?" / "엄마 여기 있네!" 그렇게 엄마한테 물어옵니다 아들이 어지간히 넉이 나갔었나 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살풋 웃음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빠져든 초저녁잠이었지요. 으레 잠에서 깨면 아침인데,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고요. 그런데 눈을 뜨니 창밖은 깜깜하고 집안은 어둑합니다. 잠에서 깬 무렵이 언제인지 깜깜하기만 할 뿐 도저히 알 수 없어 대략 난감했을 초저녁잠에서 깬 시간 밖의 시간. 해와 달이 교차하는 새벽과 저녁은 우리의 영혼이.. 2019. 12. 18. 감자를 사랑한 분들(1) 신동숙의 글밭(34) 감자를 사랑한 분들(1) 감자를 사랑한 분들의 얘기를 꺼내려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집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가마솥 뚜껑을 열었을 때처럼, 눈앞이 하얗습니다. 감자를 사랑한 분들을 떠올리는 건 제겐 이처럼 구수하고 뜨겁고 하얀 김이 서린 순간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가마솥 안에는 따끈한 감자가 수북이 쌓여 있고, 제 가슴에는 감자를 사랑한 분들 얘기가 따스한 그리움으로 쌓여 있답니다. 감자떡 점순네 할아버지도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 점순네 할머니도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 ... 권정생 선생님의 中 삽화 그림 글 이오덕 · 그림 신가영 딸아이를 학원으로 태워주는 차 안에서, "점순네 할아버지는 감자떡 먹고 늙으시고~"(백창우曲) 노래를 불러 줬더니, 뒷좌석에 앉은 딸아이가 푸하~ 하고 웃.. 2019. 12. 17.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