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39 여성혐오 시대의 진정한 신랑 찾기 여성혐오 시대의 진정한 신랑 찾기- 마르다 마리아 퍼즐 맞추기 -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문서이자 경전(經典)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각 사람의 저자가 자신의 수신자(공동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예수의 복음운동의 내력과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해설, 곧 설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같은 예수의 언행이지만 자신의 저술 목적(공동체의 현실)에 따라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요리한 측면이 있다. 순서와 세부적인 내용, 그 속에 들어있는 핵심이 약간씩 달라진 이유가 거기 있다. 네 개의 복음서를 다 가진 우리는 이러한 흩어진 이야기들을 통합해볼 필요에 직면한다. 같은 사실(근거, fact)에 대한 제각각의 기록이 전체 복음을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련된 사실들.. 2016. 9. 21.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딸들에게 주는 편지(6)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심령이 가난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태복음 5:3).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7장 29절까지 이어지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첫 구절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시나이 산에서 모세로 부터 율법을 받았듯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계명으로서 산상수훈을 반포하셨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 ‘은혜와 진리(grace and truth)’는 같은 말이다. 은혜 따로 진리 따로가 아니라 은혜가 진리고 진리가 은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리가 왔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절.. 2016. 7. 11.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9) 파추부 노인, 그 아스라한 생존자 지난주는 지난해 중동감기로 격리병동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일 년이 되는 즈음이었다. 마침 완치자 연구 프로그램에서 검사가 있어 서울대 병원엘 갔다. 의사가 가지고 있는 두꺼운 개인기록 겉장에 ‘생존자’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생존자로구나.’ 그 사실을 기뻐해야할지 축하해야할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당시 입원자들 가운덴 별의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죽음의 위협과 강제 격리 상태에서의 심각한 불안은 환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반응을 일으켰던 것이다. 집에 가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살려달라고 발작을 일으키고, 개중에는 억지로 제압을 해야 하는 피치 못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2016. 6. 20. 결국을 산다는 것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7) 결국을 산다는 것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뭘 어찌해야 하는지 허둥대는 꼴이라니!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이건 분명 표절이다.) 그제는 존경하는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에 갔었고 서울만 가면 도지는 촌병에 더쳐 뒤풀이도 못가고 파김치가 돼 돌아 왔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서울에서 느끼는(혹은 확인하는) 바는 170cm도 못 되는 내 단신의 병신스러움이다. 이런 경우 대개 작음과 못남은 짝을 이뤄 병진(竝進)해 나간다. 작음에서 못남이 발생하는 건지 못남에서 작음이 유발되는 건지 모르겠다. 짐작건대 선천적 육체의 작음이 후천적 도시의 거대함 속에 떨어진 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작용했으리라. 내가 사는 시골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외려 작으.. 2016. 6. 16. 헤아려본 슬픔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6) 헤아려본 슬픔 "당나귀야! 이를 악물고 지나가자.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지나지 못할 강이 없단다." -모옌, 붉은 수수밭. 광풍 같은시간들 1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통해 광풍과 같이 치달렸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다. 충격과 고통과 슬픔들이 다시금 내 몸과 맘에 재생되는 듯하다. 그 공포스럽고 견딜 수 없었던 감각들이 가족들의 내면에 어떤 상흔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겼을지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다. 그토록 가혹하게 우리를 휘몰아쳤던 세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도 위로도 외면한 채 잠잠하기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상에게 그런 걸 기대할리도, 한다할지라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기억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것이.. 2016. 6. 1. 세월호 이후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 세월호 이후- 세월호 고의침몰의혹사건 2주기를 맞아 - 세월호를 구하다 세월호(고의침몰의혹사건)는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한 사건이다. 세계가 우리의 충격과 참담에 동참했다. 그러나 여기엔 우리 국민만이 느끼고 있는 어떤 곤혹스러운 진실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이나 긍정하는 자들이나 분단된 대한민국 남쪽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지하고 있는 어떤 진실. 실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히브리서 11:3)다. 보이는 것 뒤에는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고,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실체(實體)가 있다. 그 실체엔 우리 국민의 개성적 특질이라 할 수 있는 고질적 악과 잔인함, 비굴함과 비겁함.. 2016. 4. 17. 이재철 목사, 죄인 중에 괴수인가 율법의 선생인가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3) 이재철 목사, 죄인 중에 괴수인가 율법의 선생인가 -자기 도덕의 우상과 기독교 신앙의 착종- (디모데전서 1:1-16) ‘성경’ 본문을 들여다보면 라는 주제로 연속해 말씀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성경’ 말씀(메시지)을 ‘영혼의 양식’이라 부른다. 양식이란 먹어서 살고 힘이 생기는 음식이자 치유하는 약(藥)이다. 목사로서 내 설교가 과연 주리고 목마르고 아픈 세상의 음식이자 음료이자 양약이 되는 건지 늘 반성을 하게 된다. 제 처음 계획은 따뜻하고 온정 넘치는 기독교적 화해와 용서의 소박한 식탁을 준비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각박한 생활에 시달린 성도들에게 하루나마 관대한 위로의 말씀으로 쉼과 힘과 용기를 격려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런 게 없었던 건 아니다. .. 2016. 3. 13.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2)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욥기 6:26) - 4인방 모델 인상 비평적이고 경솔한 말일까 두렵고 삼가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복음주의권)의 목회 현실은 4인방(옥한흠, 홍정길, 이동원, 하용조) 모델에 따른 것이라 말하고 싶다. 4인방 모델이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주 이 시대의 멘토 혹은 영적 교사(스승), 차세대 지도자로 불린다. ―그런 헌사들을 그들이 선호하는지 거부하는 진 분명치 않다― 인정한다. 그들은 현실 목회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국내외의 각종 집회의 연사로 초빙되어 강연을 하고 설교를 했고 또 그것을 책으로 출판한다. ―그들은 많게는 벌써 수십 권의 저서를 저술했다!―.. 2016. 2. 21. 김석기를 기억한다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1) 김석기를 기억한다 -그를 위한 변명이 불가능한 이유- *이 글은 2013년 11월 23일자 세계일보 논설위원 조정진씨의 칼럼 을 읽고 썼던 글이다. 그 글은 여전히 인터넷에 남아있으니 누구든 찾아 읽어볼 수 있다. 조정진이라는 개인 논설위원 조정진씨의 칼럼 을 읽었다. 나는 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다. 같은 신문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에 대한 어떤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용산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남일당 망루에 오르기까지, 자신과 가족들의 힘겨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치대며 시달려온 가족사에 대해 조정진 논설위원이 무관심한 것과 대략 같은 무관심이다. 내게는 에 대해 할 말이 없었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 2016. 1. 19.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