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5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잠깐 기도를 드렸다. 지금은 남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초등학교, 하지만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나라 중심에 있는 학교가 되기를,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내가 서 있는 이 운동장에서 맘껏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잠깐의 기도에도 간절함이 담겼다. 기도 끝에 짧게 보고를 드리고는 첫 걸음을 옮긴다.‘저 이제 떠나요!’ 대지를 적시는 비가 먼 길 나서는 걸음을 기억하고 격려하는 하늘의 손길처럼 여겨졌다. 첫날 일정은 거진항까지다. 로드맵에 적힌 거리는 15.5km, 앞으로 걸을 길이 만만치 않으니 첫날은 가볍게 몸.. 2017. 7. 13. 가장 좋은 지도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8)가장 좋은 지도 “목사님, 혼자 걸으실 것을 감안해 코스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노인은 늙어가고 젊은이는 사랑하며 아이는 태어납니다. 목사님 그 땅 사랑하시는 줄 진작부터 알기 때문에 저도 광야 같은 그 길 ‘강추’합니다. 터널이 많이 생기고 도로가 넓혀지면서 걷기 좋던 그 길이 위험천만한길로 변했다는 것이 문젭니다. 하여튼 다음 주 중 코스를 만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예비 일을 이틀 정도 두시면 좋겠습니다. 고성~철원은 궁예가 강릉을 출발해 철원으로 가며 걸었던 길, 철원~파주는 왕건이 철원을 오가던 길이라 생각하면 재미 있습니다.” “목사님, 아주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걸으시는 거 로드맵입니다. 숙박처, 식당 등은 일일이 다 체크를 못했.. 2017. 7. 10.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열하루 동안 DMZ 인근마을을 따라 홀로 걷기로 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휴식이나 유람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열하루 일정을 ‘걷는 기도’라 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야 늘 드려왔다고는 하지만, 구별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허리가 잘린 채 철조망을 두르고 있는, 서로를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내 나라 그 땅을 내 발로 걸어가며 드리는 기도는 가만히 앉아 드리는 기도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을 생각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외에도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기도를 .. 2017. 7. 8.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명파는 또 하나의 땅 끝처럼 먼 곳에 있었다. 월요일 새벽, 아들 규민이와 함께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전날 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아침 6시 30분 속초행 고속버스를 예약해 둔 터였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버스에 타면서 표의 절반쯤을 잘라내던 것은 이젠 옛 시대의 유물, 이제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예약한 내용을 핸드폰으로 보여 주기만 하면 되었다. 핸드폰에 있는 예약권을 단말기에 대니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앉을 좌석번호까지를 알려준다. 마치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기계가, 그것도 친절한 목소리로!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승객이 많았다. 드디어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한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눈.. 2017. 7. 6. 챙기지 않은 것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5) 챙기지 않은 것 배낭에 이런저런 짐들을 챙기며 일부러 까지는 아니라도 굳이 따로 챙기지 않은 것이 있었다. 지도였다. 지도를 챙기지 않는 일은 누가 봐도 무모한 일이었다. DMZ을 따라 걷는 길은 짧지도 않고 단순한 길도 아닐 것이다. 거의 모든 길이 낯설 것이었다. 길과 지명과 하천과 산과 고개 등이 상세하게 적힌 지도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알아보지 않았고, 구하지 않았고, 챙기지 않았다. 성격이 꼼꼼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생각지 않은 곳에서 느닷없이 다가오는 불확실성과 한계를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미리 챙기지 않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숙박 장소였다. 열하루의 일정이니 열흘은 어디선가 잠을 자.. 2017. 7. 3. 배낭 챙기기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 배낭 챙기기 첫 출발지를 강원고 고성에 있는 명파초등학교로 정했던 것은 함 장로님의 제안이었는데, 나도 흔쾌히 동의를 했다. 의미 있는 일이다 싶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데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초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생각 끝에 월요일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했다. 명파초등학교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첫 걸음을 떼려면 주일 밤에 속초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버스 시간을 알아본 결과 월요일 아침 일찍 떠나도 가능할 것 같았다. 열흘 여 교회를 비우는 것이니 떠나기 전 마무리를 잘 하고 떠나는 것도 사소한 일일 수는 없었다. 덕분에 가방은 주일 밤에 싸도 되었다. 가져갈 짐들을 거실 바닥에 펼쳐 놓았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정 장로님께 경험상 열흘 여 .. 2017. 7. 2.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 더는 힘들지 않으려고 길을 떠나기 전 망설인 일이 있었다. 일정을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야 하나 마나, 고민이 되었다. 미수(米壽)를 맞은 어머니는 막 호주를 다녀온 뒤였는데, 내 일정을 알면 걱정을 하실 것 같았고, 그렇다고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이야기를 듣게 되면 서운해 하실 것 같았다. 생각 끝에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북에서 내려오실 때 어디로 해서 왔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어머니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대답을 해 주었다. 고향이 강원도 통천군 벽양면인 아버지는 여름에 먼저 서울로, 어머니는 이듬해 봄에 각각 남으로 내려오셨다. 이번에 걷는 길 중에는 부모님이 내려올 때 걸었던 길이 포함되어 있을 것 같았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 2017. 6. 30. 떠날 준비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 떠날 준비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DMZ를 따라 걷는 거리는 340km였다. 함 장로님이 적어주신 로드맵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열하루의 일정이니 하루 평균 30km씩을 걷는 셈이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는 있다. 로드맵에 적은 거리가 내비게이션으로 계산한 것이라 했으니 막상 걷는 거리는 다를 것이다.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목회를 하면서 열하루라는 시간을 비우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일들을 있으면 불가능하고, 불가피한 일들이 없다면 다녀올 동안의 일들을 미리 해두어야 한다. 주일을 한 주 비워야 했지만, 다녀오는 동안의 모든 예배는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두 곳 신우회 예배는 다녀온 다음날로 조정을 했다.. 2017. 6. 27.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 걷는 기도를 시작하며 필시 그럴 것이다. 불볕더위 아래 한 마리 벌레 같을 것이다. 지렁이나 굼벵이나 송충이가 길 위를 기어가는 것 같을 것이다. 한 마리 벌레 같은 모습으로, 한 마리 벌레 같은 심정으로 길을 걷기로 한다. 허리가 잘린 내 나라 강토, 그 아픔의 땅인 DMZ를 따라 걸어야지 했던 것은 오래 전부터 마음에 있던 생각이었다. 한 형제요 자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해 불신과 증오의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곳, 그 아픔의 땅을 걷고 싶었다. 문득 더는 미룰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두 가지 이유가 마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할 것 같았다.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으며 건강이 따르지 않으면, 그래서 마음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하.. 2017. 6. 26.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