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막연한 소원 어둠이 한참 내린 저녁, 아내가 부른다. 나가보니 작실에서 광철 씨가 내려왔다. “청국장 하구요, 고구마 좀 가지고 왔어요. 반찬 할 때 해 드시라고요.” 그러고 보니 광철 씨 옆에 비닐봉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그 중 하나엔 허옇게 덩이진 청국장이 서너 개 담겨 있었다. “청국장을 누가 했어요?” 아버지와 광철 씨 뿐 청국장을 띄울만한 사람이 없다. “제가 했어요. 그냥 했는데 한번 먹어보니 맛이 괜찮던데요.” 사실 난 청국장을 잘 안 먹는다. 아직 그 냄새에 익숙하질 못하다. 그러나 광철 씨가 띄운 것, 비록 광철 씨 까만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정을 생각해서라고 맛있게 먹으리라 생각을 하며 받았다.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광철 씨와 편하게 얘기 나눈 지도 오래 되었다. 중학.. 2021. 4. 9. 봄(22) 꽃으로 피었으니 꽃으로 져야지 요란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걸음걸음들 다시 한 번 눈부시다 - (1996년) 2021. 4. 8. 봄(21) 너무 쉽게 진다고 너무 쉽게 밟진 마세요 언제 한 번 맘껏 웃은 적 있는지 애써 묻지 않잖아요 - (1996년) 2021. 4. 7. 봄(20) 감탄할 새도 없이 목련이 터지고 안쓰러울 틈도 없이 목련이 지고 우리 생 무엇 다를까 괜스레 꽃잎 밟는 발끝 아리고 - (1996년) 2021. 4. 6. 봄(19) 모두가 본 것을 보았다면 모두가 들은 것을 들었다면 덩달아 말했겠지요 두 팔 벌려 그냥 웃는 이유를 당신이야 아시겠지요 - (1996년) 2021. 4. 5. 봄(18) 겨우내 집안에 있던 화분들을 어느 날 아내는 밖으로 낸다. 일광욕 시키듯 나란히 내 놓았다. 고만고만한 화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처럼 볕을 쬔다. 일찍 핀 몇몇 꽃들이 해맑게 웃고 눈이 부신 듯 이파리들은 환한 윤기로 반짝인다. 더욱 곱고 따뜻하게 내리는 별 조심스레 볕이 문을 두드린다. 봄이다. - (1996년) 2021. 4. 4. 봄(17) 애써 묻지 마세요 맞아요 흔들린 적 있어요 바람에도 별빛에도 무시로 흔들렸지요 그래도 한 가지 당신을 떠난 적 없답니다 그럴수록 더 깊이 당신 향해 뿌리를 내렸으니까요 - (1996년) 2021. 4. 3. 봄(16) 난간에 서서 이불을 터는 것은 먼지를 터는 것만이 아니어서 어둡고 무거웠던 마음 구석구석 눅눅했던 마음 어설프고 엉성했던 마음 생각만큼 사랑하지 못했던 마음 모두 털어내는 것이니 펄럭펄럭 하늘을 향해 마음의 날개 하나 다는 것이니 - (1996년) 2021. 4. 2. 봄(15) 묻지 않을래요 당신 어디 계신지 보이지 않아도 아니 계신 곳 따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2021. 4. 1.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