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2)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에서 깨었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소리, 새들이었다. 필시 두 마리 새가 나란히 앉아 밤새 꾼 꿈 이야기를 나누지 싶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새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여겨지질 않았다.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데도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고, 윤기 있는 소리에 듣는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일까? 단지 새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새들이라고 무조건적인 아량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 이른 시간 끊임없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데에는 분명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세수를 할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언의 한 말씀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언 27:14)는 구절이었다.


그동안 교회는 축복을 한다는 이유로 새벽에 큰 소리를 냈던 것은 아닐까, 큰 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웃을 향하여 지금 축복을 하는데 그게 무슨 가당치 않은 반응이냐며 오히려 불쾌하게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축복을 한다고 해도 이른 새벽의 큰 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저주와 다를 것이 없는 데도 말이다.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마땅히 전하는 방법 또한 축복이어야 한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와 됫박  (0) 2020.05.26
고소공포증  (0) 2020.05.25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0) 2020.05.24
몸이라는 도구  (0) 2020.05.23
사랑과 두려움  (0) 2020.05.22
청개구리의 좌선  (0) 2020.05.21
posted by

몸이라는 도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1)


몸이라는 도구 


인우재 방에 깔린 비닐장판을 걷어내고 종이장판을 깔았다. 처음엔 흙 위의 멍석이 전부였다. 멍석이란 짚으로 만든 것, 생각하면 단순했다. 널찍한 돌로 된 구들장을 깔았으니 돌 위의 흙, 흙 위의 풀이 방바닥의 전부인 셈이었다. 방에 누울 때마다 자연 위에 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았지만 인우재를 찾는 이들이 불편해 했다. 엉덩이가 배기는 것보다는 벌레와 친하지 못한 이들의 불편이 참으로 컸다. 어떤 이는 경기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결국은 멍석을 걷어내고 종이를 붙였다. 쌀을 담던 부대의 종이를 붙였다. 그렇게 지내던 중 먼 친척 되는 분이 요양차 1년여 머무는 동안 비닐장판을 깐 것이었다.


비닐장판은 물걸레질을 할 수 있어 편하긴 하지만, 인우재와는 안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덥혀야 하는 구조에선 더욱 그랬다. 뜨거운 방바닥에 비닐장판, 마음부터 편하지가 않았다.



주일 저녁 아내와 함께 인우재를 찾아 다음날 새벽부터 일하기를 시작했다. 방의 짐부터 옮겨야 했다. 이부자리를 옮기고, 책꽂이를 비우기 위해 책을 옮긴 뒤 책장을 밖으로 냈다. 비닐장판을 벗겨내니 벽지 아래쪽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일일이 잘라내고 잘라낸 곳에 초배지를 바른 뒤 벽지를 발랐다. 방바닥에도 초배지를 발랐다. 방에 불을 때고 초배지가 마르기를 기다려 그 위에 장판지를 붙였다. 두툼한 장판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먼저 장판지를 물로 적셔두는 것이 필요했다.


간단할 것 같았지만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사이사이 쉬는 시간엔 불쑥 자라 오른 마당의 풀을 베기도 했다. 오후가 되어 일을 마칠 즈음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야 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자유롭지 못했다.  


돌아오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잠시 마루에 앉아 쉬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60년 넘게 쓰는 연장이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10년 쓰는 연장도 찾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 몸이라는 연장을 60여 년 써왔으니, 고단할 때도 된 셈이었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몸, 그런데도 60년을 넘게 쓰고 있으니 실로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고단함을 통해 깨닫는 고마움이 새삼스럽고 새로웠다. 아프다고 고단하다고 불평만 할 일이 아니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소공포증  (0) 2020.05.25
전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0) 2020.05.24
몸이라는 도구  (0) 2020.05.23
사랑과 두려움  (0) 2020.05.22
청개구리의 좌선  (0) 2020.05.21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1) 2020.05.20
posted by

사랑과 두려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0)


사랑과 두려움




사막 교부들의 금언을 읽다가 만난, 압바 이시도루스의 말이다.


“제자들은 진정 자기 스승인 사부들을 사랑하고, 자기 지도자인 그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잃어서도 안 되고,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어둡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의 말이 공감되는 것은 더 이상 두려움도 사랑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조심스러운 걸음새를 갈수록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posted by

청개구리의 좌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9)


청개구리의 좌선 



청개구리가 선에 들었다.
작약 꽃 지고 남은 꽃받침,
그곳에 들어앉아 시간을 잊는다.
바람 거세게 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들어앉아 세상을 잊을
나의 꽃받침은 어디일지.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이라는 도구  (0) 2020.05.23
사랑과 두려움  (0) 2020.05.22
청개구리의 좌선  (0) 2020.05.21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1) 2020.05.20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0) 2020.05.19
배운 게 있잖아요  (0) 2020.05.18
posted by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 기억의 편집
    참 무서운 말입니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믿어버리면
    진실이 된다는

    김현호 2020.05.21 10:18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8)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자식들의 비석을 쓰다듬는 어머니들의 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눈물이 어찌 마를까. 어찌 뜨거움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머니 가슴속에 묻은 자식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여전히 꽃다운 청춘들이다.


                              사진/일요신문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모르기도 했고,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오히려 광주의 아픔을 헤아리게 된 것은 군 입대 후였다. 입대를 한 것이 신학공부 3학년을 마친 1981년 7월 1일, 5.18이 일어난 지 막 1년이 지날 때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광주 송정리 평동에 있는 포대였다. 


그 해였는지 이듬해였는지, 근무하던 부대에서는 동원예비군 훈련이 있었다. 예비군들이 부대로 들어와 며칠간 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예비군들의 대부분은 광주 인근에 사는 이들이었다. 예비군 훈련 중에는 야간보초를 예비군들과 같이 섰다. 우리보다 먼저 군 생활을 마친 선배들, 1시간의 보초 시간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조심스럽게 물었던 것이 5.18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발설 후 생길지도 모를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걸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을 겪었구나, 오히려 대답을 피하는 침묵이 버거운 무게와 헤아릴 길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당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한결같이 다른 말을 한다. 아예 회고록에 박아 책으로 내기까지 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망각이 아니다. 망각보다 무서운 것은 기억의 편집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과 두려움  (0) 2020.05.22
청개구리의 좌선  (0) 2020.05.21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1) 2020.05.20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0) 2020.05.19
배운 게 있잖아요  (0) 2020.05.18
기도이자 설교  (0) 2020.05.17
posted by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7)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안경을 맞췄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다보면 글씨가 흐릿했다. 노트에 설교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쓰면서도 받침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침 교우 중에 안경점을 하는 교우가 있어 찾아갔다. 일터에서 교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새롭다. 마침 손님이 없어 같이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이 우선 검사부터 하자고 한다. 자리에 앉아 정한 자리에 턱을 괴자 집사님이 내 눈을 기계로 살핀다. 그런 뒤에 집사님이 가리키는 숫자를 읽는다. 애써 잘 읽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두툼한 철로 된 안경을 쓰게 하고는 렌즈를 바꿔 끼우며 다시 글자를 읽게 한다. 글자가 한결 또렷해진다. 


다초점렌즈보다는 가까운 것이 잘 보이는 렌즈를 먼저 써보기로 한다. 읽고 쓸 때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겠다 싶었다. 처음으로 쓰는 안경, 뿔테를 택했다. 나도 이젠 안경을 쓰는구나 싶은 작은 아쉬움이 지나는데, 증세가 이제 나타난 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집사님이 위로를 한다.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니 새롭다. 희미한 것이 밝아져 마치 어둑한 데서 읽고 쓰던 중에 불을 켠 것 같다.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희미했던 세상을 밝게 바라볼 수 있는. 

posted by

배운 게 있잖아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6)

배운 게 있잖아요

“저 경림이예요.”

뜻밖의 전화였지만, 전화를 건 이가 누구인지는 대번 알았다. 이름과 목소리 안에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가 되어 경림이는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인우재로 올라왔다. 

함께 동행한 둘째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 웃음이 나왔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 단강에 들어왔을 때,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단다.” 

그렇다, 경림이는 단강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만난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 열심히 교회에 나왔고, 고등학교 때 이미 교회학교 교사를 했었다. 유아교육을 공부한 뒤엔 자기도 고향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며 단강교회에서 하는 ‘햇살놀이방’ 교사 일을 맡기도 했었다.


단강을 떠나 독일로 가고, 그러는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경림이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지만 내게는 오래 전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 경림이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동안 결혼을 하여 용인에서 세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여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했다. 주어진 일을 더 잘하고 싶어 남는 시간을 쪼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견하고, 고맙구나.”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하자 경림이가 웃으며 대답을 했는데, 그 말이 고마웠다.

“목사님과 사모님께 배운 게 있잖아요.”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1) 2020.05.20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0) 2020.05.19
배운 게 있잖아요  (0) 2020.05.18
기도이자 설교  (0) 2020.05.17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0) 2020.05.16
  (1) 2020.05.15
posted by

기도이자 설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5)


기도이자 설교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자, 세상을 향한 설교입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만의 소리를 향해 순례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마틴 슐레스케의 <바이올린과 순례자>에 나오는 한 구절은 그의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군더더기를 버린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겸손해지거나 단출해진다. 




우리의 삶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라는 말과 삶이 곧 세상을 향한 설교라는 말에 모두 공감을 한다. 기도와 설교가 일상과 구별된 자리와 시간에 특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많은 순간 무의미하거나 비루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 곧 기도이자 설교라는 말은 그 말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짧은 한 문장 안에서 일어나는 공명이 맑고 길다. 서로 다른 현이 깊은 화음을 만들어낸다. 맑은 샘 하나를 들여다보다 풍덩 물속으로 빠지고 만다. 기꺼이.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0) 2020.05.19
배운 게 있잖아요  (0) 2020.05.18
기도이자 설교  (0) 2020.05.17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0) 2020.05.16
  (1) 2020.05.15
때로 복음은  (0) 2020.05.14
posted by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4)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도리보다는 실리가 앞서는 세상이다. 유익보다는 이익이 우선인 세상이다.


많은 일들이 마땅하다는 듯이 진행된다. 하도 점잖게 이루어져 그걸 낯설게 여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경박(輕薄)하고 부박(浮薄)한 세상이다. 




비 때문일까, 낡은 책에 담긴 이행의 시구가 마음에 닿는다. 


"우연히 아름다운 약속 지켜
즐겁게 참된 경지를 깨닫네
사람이 좋으면 추한 물건이 없고
땅이 아름다우면 놀라운 시구도 짓기 어려워라"


"한평생 얻고 잃는 게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유유히 웃어넘기곤 묻지를 않으려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운 게 있잖아요  (0) 2020.05.18
기도이자 설교  (0) 2020.05.17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0) 2020.05.16
  (1) 2020.05.15
때로 복음은  (0) 2020.05.14
빈 수레가 요란하다  (0) 2020.05.13
posted by

  • 목사님 시가 참 좋습니다. 퍼갈게요..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5.20 15:4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3)



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남겨 두기로 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편안한 일인가.


다 가지려 하지 않는다.
갖지 못할 것을 인정하며 비워두기로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넉넉한 일인가.





다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로 못할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침묵하기로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푸근한 일인가. 


다 가보려 하지 않는다.
가닿을 수 없는 미답의 세상이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늑한 일인가.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이자 설교  (0) 2020.05.17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0) 2020.05.16
  (1) 2020.05.15
때로 복음은  (0) 2020.05.14
빈 수레가 요란하다  (0) 2020.05.13
독주를 독주이게 하는 것  (0) 2020.05.12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