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할머니 민박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6) 할머니 민박 폭우가 쏟아지는 진부령을 걸어 오르다 만난 두 사람의 웃음이 선하다. 부부지 싶은 두 사람은 우비를 입은 채로 버스 정류장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 서 있는 두 대의 자전거, 필시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서 길을 나섰다가 생각지 않았던 폭우를 만나 버스 정류장으로 피한 것이리라. 여전히 비를 맞으며 그 앞을 지나가자 두 사람은 빙긋 나를 보고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 나도 두 사람을 향해 빙긋 웃었다. 두 사람도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았으리라. 때로는 말로 하지 않아도 웃음 하나로도 나눌 수 있는 고마운 마음들이 있다. 다녀보니 숨어 있는 아름다운 곳들이 많았다. 모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마.. 2017. 7. 27. 몇 가지 다짐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5) 몇 가지 다짐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다. 걸으면서 지킬 몇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첫째, 잠은 허름한 곳에서 잔다.둘째, 밥은 최소한의 것을 먹는다.셋째, 꽃 한 송이, 풀잎 하나 꺾지 않는다.넷째,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킨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지키기 쉬웠던 것은 네 번째 다짐이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다니면서 내가 버리지는 말아야지 했다. 배낭 밖에 있는 주머니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 담았다가 숙소에 들어가면 봉지를 비웠다. 당연한 일인데도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또 하나 잘.. 2017. 7. 25. 행복한 육군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4) 행복한 육군 자주 혹은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기회가 될 때면 함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다. 로드맵을 만들어주신 뒤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난 건 아닌지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들어 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무시면서 꾀를 내세요. 응원군을 불러 물도 간식도 챙기고 잠자리를 구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꾑니다. 걷는 것 이상으로 그런 일이 더 힘든 겁니다. 육군 행군 훈련은 먹고 자는 것은 지원부대가 따로 해주기 때문에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해병대는 그것까지 스스로 해결합니다.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소속변경하시는 것을 강추!! 저만 알고 있을게요... 2017. 7. 23. 아, 진부령!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3) 아, 진부령! 소똥령 마을에서 어렵게 점심을 먹고 다시 진부령으로 오르는 길,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발은 제법 굵었지만 성근 빗줄기, 그러다가 그치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산 전체는 비로 가득했고, 비와 함께 천둥과 번개가 하늘과 계곡을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쏟아지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샌가 달리는 차들은 라이트를 켜기 시작하더니 그래도 더욱 빗발이 거세지자 내남없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모든 일들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얼른 가방에서 우비를 꺼내 입으며 메고 있는 배낭을 덮개로 덮었지만 거센 빗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몸은 금방 비에 다 젖고 말았고.. 2017. 7. 21. 소똥령 마을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2) 소똥령 마을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적인 기대와는 달리 소똥령 마을로 향하는 길은 매우 단조롭고 밋밋했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46번 국도를 걸어 올라야 했다.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열기가 담겨 숨을 마음대로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길 어디에도 소들은 보이지 않았고, 소똥 냄새는 물론 소 모는 아이들 소리나, 소 방울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길을 걸어보니 알겠다. 급경사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급경사는 얼마 동안만 참고 견디면 된다. 오히려 더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완만한 경사 길을 계속해서 걷는 일이었다. 완만한 경사는 당장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언젠지도 모르게 체력과 정신력을 바닥.. 2017. 7. 19.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1)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DMZ를 따라 열하루를 걷다보니 위험한 길들이 참 많았다. 지뢰나 낭떠러지, 무서운 동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길이 의외로 많았다. 도로에 차도만 있지 인도가 따로 없었다. 인도가 없는 길은 자동차를 타고서만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인지, 차가 없다면 돌아서 혹은 날아서 가라는 것인지, 도로를 만들 당시의 규정을 따른 것이겠지만 길을 만든 이들의 심사가 무심하게 여겨졌다. 어쩔 수 없이 도로 가장자리를 걷는 수밖에 없었다. 차들이 달리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고, 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하니 기도를 드리거나 마음을 집중하기에도 좋을 것이 없었다. 길을 걸어보니 위험한 길이 의외로 .. 2017. 7. 18. 사람은 가도 남는 것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소똥령 마을, 이름부터가 정겹다. 그곳이 어디든 고개를 넘는 소떼들이 보이고, 그러느라 소들이 싸댄 똥들이 여기저기 멋대로 나뒹굴고 있을 것만 같다. 냄새조차도 역겹지 않아 바람은 여전히 구수하게 불어올 것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어디선가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도 같다. 소똥령을 향해 가는 길에 대대리를 지나게 되었다. 문득 대대리 삼거리가 눈에 익다. 같이 신학을 공부하고 대대리 이 외진 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찍 주님 품에 안긴 친구가 있다. 최경철 목사, 눈매와 웃음이 참으로 선한 친구였다. 그 때만 해도 대대리는 땅 끝처럼 .. 2017. 7. 15.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잠깐 기도를 드렸다. 지금은 남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초등학교, 하지만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나라 중심에 있는 학교가 되기를,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내가 서 있는 이 운동장에서 맘껏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잠깐의 기도에도 간절함이 담겼다. 기도 끝에 짧게 보고를 드리고는 첫 걸음을 옮긴다.‘저 이제 떠나요!’ 대지를 적시는 비가 먼 길 나서는 걸음을 기억하고 격려하는 하늘의 손길처럼 여겨졌다. 첫날 일정은 거진항까지다. 로드맵에 적힌 거리는 15.5km, 앞으로 걸을 길이 만만치 않으니 첫날은 가볍게 몸.. 2017. 7. 13. 가장 좋은 지도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8)가장 좋은 지도 “목사님, 혼자 걸으실 것을 감안해 코스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노인은 늙어가고 젊은이는 사랑하며 아이는 태어납니다. 목사님 그 땅 사랑하시는 줄 진작부터 알기 때문에 저도 광야 같은 그 길 ‘강추’합니다. 터널이 많이 생기고 도로가 넓혀지면서 걷기 좋던 그 길이 위험천만한길로 변했다는 것이 문젭니다. 하여튼 다음 주 중 코스를 만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예비 일을 이틀 정도 두시면 좋겠습니다. 고성~철원은 궁예가 강릉을 출발해 철원으로 가며 걸었던 길, 철원~파주는 왕건이 철원을 오가던 길이라 생각하면 재미 있습니다.” “목사님, 아주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걸으시는 거 로드맵입니다. 숙박처, 식당 등은 일일이 다 체크를 못했.. 2017. 7. 10. 이전 1 ··· 113 114 115 116 117 118 119 ··· 129 다음